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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따라 배상액 다른 형제복지원 소송... 정의 구현 지연된다

더불어 함께 2024. 4. 5. 10:12

 

 

 

 
 
 
 
전국 34개 법원에서 손배소 진행
'원고 승소' 1심 판결 잇따르지만
같은 내용에 피해인정 범위 달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1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한국판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라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지만, 재판부마다 인정하는 배상 액수가 달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책임을 부인하며 잇달아 항소하고 있어 국가폭력에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상당 기간 미뤄질 전망이다.


재판부마다 피해 인정 범위 차이

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총 34건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가 지난해 12월 21일 국가가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면서 원고 26명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후,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엔 부산지법에서도 같은 취지로 "피해자 70명에게 총 164억여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오는 등 최소 12건 이상 피해자들이 1심에서 승소했다.

문제는 소송이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재판부마다 인정하는 피해 범위에 편차가 있다는 점이다. 처음 배상 책임을 인정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부랑인 강제수용 지침이었던 '내무부훈령 410호'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 1975년 12월 15일 발령 이전에 입소해 있던 기간에 대해서도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한 피해자는 1971년 4월부터 약 11년치 위자료를 인정 받았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의 다른 재판부는 지난달 29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면서 "훈령의 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 작용을 피고의 불법행위로 보는 이상, 훈령 시행 전 수용 기간에 관해선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960년부터 운영된 형제복지원 측이 내무부훈령 발령 이전에 저지른 불법행위까지 국가가 책임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정신적 피해보상금(위자료) 산출 방식도 차이가 난다. 지난해 12월 판결에서 국가의 책임 범위를 '1년당 약 8,000만 원'으로 처음 제시했다. 이후 다른 재판부도 이와 유사하게 배상금을 산정하고 있지만, 일부 재판부는 뚜렷한 산정 기준을 밝히지 않아 일부 피해자들은 배상액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항소에... 피해자들 "2차 가해"

부산형제복지원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관련 일지. 진화위 제공

각각의 재판부가 독립된 판단을 한 결과이고 항소심·상고심을 거쳐 편차가 좁혀지기는 하겠지만, 이미 피해자들이 고령인 과거사 사건의 특성상 결과가 천차만별이면 '정의 구현' 시점이 그만큼 지연된다는 문제가 있다. 피해자들이 불복해 항소하면 구제받을 날은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첫 승소 판결과 지난달 29일 재판을 모두 맡았던 법무법인 일호의 김소라 변호사는 "위자료 산정은 재판부 재량이지만 훈령 발령 시점을 기준으로 삼은 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빠른 피해 회복을 바라는 다수 피해자들은 항소를 하지 않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피해자들은 항소를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마저 "다른 사건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 항소하고 있어 빠른 피해 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날까지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정부는 서울중앙지법과 부산지법에 선고된 12건 판결에 대해 모두 항소했다. 피해자 측은 "그렇게까지 해서 배상금 몇 푼을 깎으려는 가해자 대한민국을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피해자들을 몇 번 죽이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사건의 공식 피해자만 수만 명에 달하는 만큼, 지리한 법정 분쟁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따르면 1975년부터 1986년까지 형제복지원 입소자로 확인된 인원은 3만8,000여 명에 이른다. 이날 법률구조공단은 진화위로부터 진실 규명 결정을 받은 490여 명의 피해자와 유족을 대리해 소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960년 육아원으로 설립된 형제복지원은 1971년 시설 목적을 부랑인 쉼터로 바꾸었다. 1975년 12월부터는 박정희 정부가 부랑인 단속을 내무부훈령으로 정하면서 공권력에 의한 강제수용이 공식화됐고, 이들을 대상으로 감금과 폭행,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가권력이 법적 근거 없이 사회적 약자를 탄압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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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

요약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인권유린 사건. 1987년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함으로써 내부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령을 근거로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영장도 없이 형제복지원과 같은 시설에서 구금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형성된 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형제복지원에서 1975년부터 1988년 동안 657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규명을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2014년 7월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2016년 회기 종료로 폐기되었다. 오랜 사회적 관심과 문제제기 끝에, 2022년 8월 24일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191명에 대한 1차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정의

형제복지원

원생들의 강제 노역을 위해 만든 숙소. 야산에 원생 1백80명을 강제 노역시키기위해 축사를 개조, 탈조를 막기위해 쇠창살을 만들어 숙소로 이용했다. 198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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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인권유린 사건. 1987년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함으로써 내부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후에 형제복지원 운영과정에서 수용인은 감금상태에서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에 이르는 등 인간 존엄성을 침해받았으며 국가는 형제복지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2022년 8월 24일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확인에 의하면 형제복지원의 사망자는 657명으로 밝혀졌다.

배경

이같은 인권유린이 버젓이 자행된 근거는 국가가 제공했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호가 그것이다. 정부는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영장도 없이 구금하도록 이 훈령을 만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사회정화'가 목적이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주민등록증이 없거나, 집 잃은 어린 아이처럼 훈령의 실적 채우기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들어갔다.

실제 박아무개씨는 14살이던 1984년 9월 집을 나와 어느날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한 승합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신분증을 요구했다. 미성년자여서 주민등록증이 없다고 했더니, 그를 차 안으로 밀어넣어 형제복지원으로 강제로 데려갔다. 9살이었던 한 여자아이는 1982년 엄마 심부름을 하느라 거리에 나섰다가 형제복지원으로 납치됐고 이후 거의 날마다 매를 맞거나 기합을 받았다고 한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2만~3만명의 사람들이 형제복지원에 잡혀들어가 감금됐다. 가혹행위, 노동력 착취, 성적 학대, 인권 유린 등이 잔혹하게 자행됐다. 탈출하다 실패한 원생은 맞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에서 1975년부터 12년 동안 513명이 숨졌지만 죽음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2022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추가 조사에 의하면 형제복지원에서 1988년까지 사망한 사람은 657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1986년 단속으로 수용된 부랑인 수만 1만6125명이다. 부랑인들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법률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헌법과 사회로부터 배제된 국민이었다.

진실 규명의 과정

형제복지원 사건은 누구나 알고 알고 있지만 아직껏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했다.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돼 국가로부터 땅을 불하받고 정부 지원금으로 규모를 키운 원장 박인근씨가 횡령과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된 1987년까지 이곳에 갇혔던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는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대구고법의 불복을 거치면서 7번의 판결 끝에 1989년 무죄를 받았다. 횡령 등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형제복지원은 이후 재육원, 욥의 마을, 형제복지지원재단에 이어 2014년 2월에는 느헤미야로 수차례 바꾸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형제복지원에서 감금생활을 했던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들은 대부분 죄가 없었다. 수감자 대부분은 형제복지원을 나온 뒤 고통을 이기려고 술과 약에 의존해 살고 있다. 진상 규명을 통해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2014년 4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생존자 11명은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눈물로 호소하며 삭발을 했다. 이 자리에서 조영선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의 세월호 사건이었다. 아우슈비츠였다. 특별법 제정은 생존자들이 왜 끌려갔고 왜 희생돼야했는지 진실을 밝히기 위함이다. 생존자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져 있다. 이들이 모욕당하고 자유를 핍박받을 이유는 없다. 판결도 없이 10여년, 5년, 이렇게 감금된 수많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국회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라고 했다.

2014년 7월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55명이 진상규명을 위한 '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관계 부처인 안전행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난색을 표했고,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중이었으나 2016년 5월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2016년 7월 진선미 등 국회의원 73명이 내무부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등 피해사건 진상규명 법률안을 발의했으며, 2017년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발의 되었다.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와 결정(2022년 8월 24일)

2018년까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관련 법안에 대해서 국회 법사위에서 논의가 계속된 가운데, 포괄적으로 과거사법 하에 논의하기로 결정되었으며 2020년 6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일부개정되어 12월 시행됨에 따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하여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 규명의 필요성 여부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동 위원회는 2021년 5월 조사 개시를 결정하고 1년 3개월에 걸쳐 진상을 조사한 후 2022년 8월 24일 결정 내용을 발표했다.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형제복지원 사건 정의(2022. 8. 24)
“사회통제적 부랑인 정책 및 사회복지 및 치안관계 법령,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산시 부랑인 일시보호 위탁계약 등을 근거로 공권력이 직·간접적으로 부랑인으로 칭한 사람들을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해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

동 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191명에 대한 1차 진실규명을 결정했으며, “국가는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동 위원회는 이 사건이 이날 결정 내용에 의하면 그동안 알려진 형제복지원 사망자 552명에 더하여 105명이 더 발견되어 총 사망자는 657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 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운영과정에서 수용인은 감금상태에서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에 이르는 등 인간 존엄성을 침해받았으며 국가는 형제복지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진정을 국가가 묵살했고, 그 사실을 인지해도 조처하지 않았으며 1987년 이 사건을 축소·왜곡해 실체적 사실관계에 따른 합당한 법적 처단이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었음을 근거로 이 사건의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 결정은 국가 기관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최초로 법적 책임과 진실 규명의 필요성을 밝힌 것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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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윤

프리랜서 작가, 전 MBC 방송작가 . MBC에서 7년동안 <불만제로>, <사과나무>, <가족愛발견>, <보도특집다큐>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수 집필함. 이후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 중

출처

다음백과 | Daum 전체항목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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