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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

더불어 함께 2023. 11. 24. 18:16
알쏭달쏭 불가사리의 머리는 ‘여기’

국제 공동 연구진 Nature誌 발표, 몸 잃어버리고 머리만 남아

▲ 독특한 신체 형태를 가진 불가사리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됐다. ⓒGettyImages

바다의 별인 불가사리에게 모자를 씌운다면 어디에 올려야 할까. 중앙에 볼록 튀어나온 지점일까, 아니면 5개의 모서리 중 하나일까. 호기심 가득한 이 질문은 사실 동물학과 발달생물학 분야 전문가들도 수십 년 동안 정답을 몰랐다. 국제 공동 연구진이 불가사리 몸 구조의 비밀을 풀어내, 지난 2일 최고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불가사리의 불가사의
수정란은 분열하여 두 개가 되고, 그 후 4개에서 8개 등으로 계속 분열한다. 처음에는 모든 세포가 유사한 모양이지만, 나중에는 꼬리가 되고 머리가 되는 식으로 형태가 달라진다. 이처럼 분화를 결정짓는 유전자를 발견한 세 명의 과학자들은 199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불가사리의 신경계를 표현한 현미경 이미지(오른쪽). ⓒLaurent Formery/Evident Image of the Year Award

그런데 불가사리를 두고는 논란이 많았다. 별 모양의 신체에서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는 논란거리였다.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동물 종은 머리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단일 축을 따라 양측 대칭 구조를 가진다. 불가사리는 수정란에서 시작하여 유충으로 개화한다. 유충 때는 플랑크톤 형태로 바다에 떠다니는데 이때는 다른 동물처럼 양측 대칭 구조다. 그러다 우리가 아는 별 모양으로 마술 같이 변신한다. 양측 대칭 신체에서 어떻게 5방사 대칭형 구조로 변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수 세기 동안 여러 가설이 제시됐지만, 명확한 답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첨단 유전자 분석 기법 총동원
영국 사우샘프턴대, 미국 스탠퍼드대,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등 국제 연구진은 불가사리의 신체 지도를 그리기 위한 연구를 계획했다. 동물의 형태적 진화를 연구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유사한 다른 종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가사리는 척추동물이지만 해부학적으로는 척추동물과 형태가 매우 달라 일반적 방식으로는 연구가 어려웠다. 이에 연구진은 유전적인 부분으로 초점을 맞췄다.

▲ 컴퓨터 모델링으로 완성한 불가사리의 3차원 유전자 지도 ⓒUniversity of Southampton

연구진은 조직 내 특정 위치에서 활성화되는 유전자를 정확하게 식별하는 공간 전사체학, 형태나 구조를 자세히 조사할 수 있는 마이크로 시티(CT), RNA 단층 촬영 등 첨단 기술을 총동원했다. 불가사리의 대칭 축을 찾아내기 위해 세 가지 방향에서 불가사리를 얇게 자른 뒤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었는지를 확인하고,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재조립하여 3차원 유전자 지도를 얻었다. 이후 연구진은 불가사리의 유전자 지도를 다른 후구동물과 비교했다. 후구동물은 수정란 배아 발생 때 처음 생긴 관이 항문이 되고, 나중에 입이 만들어지는 생물을 말한다.

공동 연구자인 생명공학기업 팩바이오(PacBio)의 데이비드 랭크 박사는 “전통적 유전자 해독 방식은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해 유전물질을 작은 조각으로 잘랐지만, ‘HiFi’라 불리는 새로운 방식은 한 번에 1만 개 이상의 염기서열을 읽어낼 수 있다”며 “몇 달이 걸리던 작업을 몇 시간 안에 끝낼 수 있고, 가격 역시 수백 배 저렴해진다”고 설명했다.

 

불가사리 유전자 지도
그 결과, 공동 연구진은 불가사리 신체 구조에 대해 제시된 가설들이 모두 틀렸음을 발견했다. 다른 동물의 전뇌에 해당하는 유전자는 불가사리 팔의 중앙에 발현됐으며, 중뇌에 해당하는 유전자는 팔의 바깥쪽에 발현됐다. 팔 테두리를 따라서는 꼬리와 유사한 유전자가 발현됐다. 하지만 동물의 몸통과 관련된 여러 유전자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즉, 불가사리의 유전자에서는 대부분 동물의 머리에서 활성화되는 유전자만 발견됐다.

로랑 포메리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는 “다른 동물에서 몸통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가 불가사리의 외피에서는 발현되지 않았다”며 “불가사리는 몸통 없이 해저 바닥을 머리로 기어 다니는 동물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연구진은 형광 표지를 이용해 불가사리의 신체 부위 별로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는지를 분석했다. ⓒLaurent Formery

불가사리에 관한 화석 기록에는 몸통을 가진 불가사리의 모습이 기록되기도 했다. 연구진은 어떤 진화적 사건으로 인해 불가사리가 몸통이 없는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해삼 등 불가사리의 친척 격인 동물에서도 유사한 유전적 패턴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계획이다.

발달생물학자인 다니엘 로크사 UC버클리 교수는 “불가사리 유전학 연구는 진화적 미스터리 해결이라는 과학적 탐구를 넘어 의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가령, 불가사리는 수천 개의 관을 이용해 물을 통과시키며 먹이를 소화시키는 데, 불가사리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이해하면 인간이 질병에 대응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얻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로우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 역시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은 약 6억 년 동안 저마다의 전략으로 생존해왔다”며 “생명과학 연구는 인류와 닮은 동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익숙한 대상에만 집중하다 보면 새로운 것을 배울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