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 언론인 독하게 단죄한 이유 입력 2009.11.20 09:11호수 114 부역 언론인 독하게 단죄한 이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4년간 점령당한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엄격하고 단호했다.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임시정부는 1944년 훈령을 내려 나치독일 부역자 약 200만명을 조사했다. 이 가운데 죄질이 무거운 약 35만명이 재판에 회부됐고, 10만명 이상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는 6763명이었다. 하지만 여론은 과거사 청산 작업이 미진하고 속도가 느리다고 비판했다. 일간지 뤼마니테는 1945년 1월11일자 사설에서 “독일놈에 대한 증오, 그 공모자들에 대한 증오, 제5열에 대한 증오는 신성한 증오이자 국민적 의무다”라고 썼다. 당시 지식인의 부역 행위는 경제인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