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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무죄 판결, 우리 시장 신뢰도 10년 이상 후퇴시켜" [경제직설] 박시동 경제평론가 "2심 판결은 코리아디스카운트 강화... 최악의 선례"
더불어 걷는 길
2025. 2. 16. 12:45
에두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묻고 있는 그대로 답을 전하겠습니다. 매주 주요 경제 현안이나 과제를 다룹니다.[편집자말] |

▲이재용,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 항소심 무죄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 항소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이정민관련사진보기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분식회계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지난 3일 이같은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벗어나 삼성전자의 경영정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하는 반응과 '내란 정국에서 재벌 대기업과 총수에 대해 법치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는 상황.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사건에는 국민연금도 연관돼 있어, '국민적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주요하게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 회장 무죄 판결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 어떤 것이 있을까.
<김어준의 뉴스공장>, <홍사훈의 경제쇼>, <매불쇼> 등 유튜브 채널에 출연 중인 박시동 경제평론가는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 시장 전체의 매력도, 투명성, 투자에 대한 당위성에 치명타를 입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결국 법 위에서 지배 구조를 농락하고 회사 가치를 불투명하게 조작하는 행위들이 일어나도 처벌 받지 않게 되면서,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더 일어날 수 있다'는 최악의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회장 무죄는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기업 주가 가치 평가 절하 경향)를 더 강화하게 될 거라는 지적이다.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저평가가 국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됨은 자명하다.
"해외펀드는 세금으로 배상, 국민연금은 배상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국민적 영향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2015년 있었던 국제적 소송을 빼놓을 수 없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미국의 사모펀드 운용사 엘리엇과 메이슨은 주주 가치 침해(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부당한 비율, 0.35:1로 합병되면서 삼성물산 주주는 경제적 손해를 입게 됨)를 주장하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를 제기했으며, 지난 2023년 6월 한국 정부가 패소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엘리엇 1500억 원, 메이슨 800억 원 등의 국제배상금을 부담해야 한다(연 복리 5%의 지연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더한 값, 참여연대)"는 예측이 나왔다. 박 평론가는 "이 배상금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물게 된다"고 짚었다.
그는 "똑같은 상황에서 주주 가치 침해를 입었다는 해외 펀드는 국제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게 되지만, (이 회장 무죄로) 국민연금은 손해배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 아이러니한,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9월 이 회장을 비롯한 9명에게 구상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삼성물산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구상권을 청구한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은 합병으로 인한 피해액이 6815억 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 평론가는 "그 손실이 불법적인 행위로 발생했다면, 그 손실을 가능하게 한 당사자(이 회장 등)들에게 '손실을 물어내라'는 게 구상권 소송"이라며 "(이 회장의) 불법 행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국민의 돈이 손해를 봤음에도 벌충받을 가능성이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이재용 회장 무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강화, 국제 소송 배상금에 대한 세금 지출, 국민연금 구상권 소송 패소 가능성 높아짐'으로 이어져 결국 일반 국민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팟빵] 매불쇼의 '삼성전자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에 출연한 박시동 경제평론가. ⓒ [팟빵] 매불쇼 유튜브 화면 캡처관련사진보기
아래는 박 평론가와 나눈 주요 문답이다.
- 엘리엇, 메이슨에 대한 배상 금액은 국민 세금으로 내게 되나.
"맞다. 그건 국가가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과 메이슨은 '우리 합병에 찬성하지 않았다. 이재용에게 뇌물을 받은 최순실이 박근혜를, 박근혜가 복지부를, 복지부가 국민연금을 움직였다.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말도 안 되는 합병안이 통과됐다. 결국 국가의 불법 행위로 우리의 주주 가치가 훼손됐고, 투자금 손실 봤으니 배상하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불법을 대한민국 대법원(박근혜 국정농단 수사가 진행되며 이재용, 박근혜 등 합병 관련자들은 대법원에서 뇌물죄 및 배임죄로 징역을 선고받음, 기자 주)이 확인시켜 준 거 아니냐. 결국 대한민국 물어내, 이렇게 된 거다."
- 합병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건 국민연금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국민 개개인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는 거 아닌가.
"당연하다. 국민연금은 납부자 전체 자산의 총합이다. 그 총합을 연금수령자가 된 국민이 받아 가는 거다. 총액이 얼마나 많이 잘 유지되느냐가 전 국민에게 엔 분의 일(1/n)로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한다. 물론 국민연금이 얼마의 손실을 주장할지, 또 이게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봐야 아는 거다.
구상권은 결국 민사 소송이다. '네가 불법 행위 했잖아, 그래서 내가 이런 손해를 입었잖아'가 받아들여지려면 삼성의 불법성이 인정돼야 한다. 기존 대법원 판례(박근혜 국정농단 재판)를 보면 구상권 청구가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지난 3일 이재용 개인 및 삼성 임원에 대한 형사소송에서 전부 무죄가 나왔으니 이제 삼성 측은 '봐라, 어디 불법이 있었냐'라고 변호할 가능성이 커진 거다.
물론 형사와 민사 소송은 다르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당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 회장 무죄로) 국민연금의 구상권 청구 소송에서 유리하게 흘러갈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약해지거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이 회장 소송은 단순히 형사 소송뿐 아니라 국민연금의 민사 소송까지 연결돼 있는 이중적 의미가 있는 소송이었다."
-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그 손실이 불법적인 행위로 발생했다면, 그 손실을 가능하게 한 당사자들에게 '손실을 물어내라'는 게 구상권 소송이다. 만약에 (이 회장의) 불법 행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결국 국민의 돈이 손해를 봤는데도 벌충받을 가능성이 사라진다. 똑같은 상황에서 주주 가치의 침해를 입었다는 해외 펀드(엘리엇 등)는 국제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게 되지만, 국민연금은 손해배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 아이러니한,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삼성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 이정민관련사진보기
- 이재용 회장의 무죄 판결이 향후 다른 기업들에 미칠 영향이 있나?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주식회사 제도의 투명성과 지배구조의 선진성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사건인데, 이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결국 법 위에서 지배 구조를 농락하고 회사 가치를 불투명하게 조작하는 행위들이 일어나도 처벌 받지 않게 되면서,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더 일어날 수 있다'는 최악의 선례를 남긴 것이다.
향후 다른 기업 총수 일가의 이익 편취 행위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른 기업들도 주식회사 제도를 형해화(내용은 없이 뼈대만 남게 됨)시키고 회사 조직을 총수 일가의 지배 승계 도구로 사용하는 등의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식 시장이나 경제 구조에 매우 큰 부정적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 이재용 회장의 무죄 판결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이나 경제구조에 미칠 영향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사건은) 우리 시장 전체의 매력도, 투명성, 투자에 대한 당위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있는 국내 투자자가 3년 새 48% 빠져나갔다. 이 시장의 투명성과 지배 구조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의 기업이 가치에 비하여 주가가 저평가되는 현상)의 원흉으로 지배 구조의 불투명성과 총수 일가의 지배권 남용을 꼽는다. 이걸 해결하자는 게 학계, 시민단체, 경제계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등의 정책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보자는 거였는데 거기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는 행위인 거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도 무죄(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으로 회사에 970억 원의 손해를 끼치며 편법 경영권 승계를 한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회장은 2009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음, 기자 주)가 나왔다. 이후에 얼마나 많은 회사들이 승계의 불법적 도구로 전환사채를 사용했나. 이번 건도 마찬가지다. 유사한 수법을 바로잡으려면 법이 또 바뀌어야 하고 처벌 규정도 둬야 하는 등 대책이 엄청 따라야 한다. 우리 시장의 투명성을 적어도 10년 이상 후퇴시킨 사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