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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KEC 노조 10년 투쟁기

더불어 걷는 길 2023. 6. 23. 17:46

‘30억 손배’ 최저임금 받으며 다 갚았다

KEC 노조 10년 투쟁기

비메모리 반도체회사 KEC 노사는 2010년 임단협 결렬과 파업 이후 10년째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노조는 그해 6월30일 회사가 직장폐쇄를 하며 여성 기숙사에 용역을 투입해 잠자던 여직원들을 끌어낸 것을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 회사는 파업 참여 정도에 따라 조합원들을 구분해 다른 색깔의 옷을 입히고 7주간의 교육을 시켰다. 노조는 “회사가 이 교육기간 동안 모멸감을 주는 교육을 하고 퇴사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KEC지회 제공

회사 측의 1년 ‘직장폐쇄’에
14일간 점거 파업 맞섰지만
6년 소송 끝 30억 배상 판결

노조원들 3년간 월급서 갚아
한국 노동운동사 최초 사례로
‘10년 투쟁의 힘’ 비결을 묻다

파업을 했다. 회사는 1년 동안 ‘직장폐쇄’를 했고, 노동조합(노조)은 14일 동안 공장을 점거했다. 파업이 끝났다. 공장 문도 다시 열렸다. 회사는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노조에 301억원을 청구했다. 6년간의 재판 끝에 법원은 노조가 회사에 30억원을 배상하라는 조정안을 내놨다. 노조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말로 이 돈을 갚았다.

조합원들은 3년 동안 최저임금 150만원만 받고 나머지 임금을 매달 꼬박꼬박 회사에 압류당했다. 파업 후 회사가 손해배상 청구로 노조를 압박하는 것은 대한민국 노동사에서 흔하고 흔한 이야기지만, 노조가 손해배상액을 ‘일하며 갚아버린’ 것은 이 사업장이 유일하다.

퇴사하면 손해배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손해배상을 하는 동안 자발적 퇴사자는 5명에 불과했다. 노조원들은 빚을 내고 집을 줄이고 자녀들 학원비를 아껴가며 회사가 끈질기게 청구한 ‘파업의 빚’을 청산했다. 경북 구미의 비메모리 반도체 회사 KEC의 이야기다.

1969년 설립된 KEC(구 한국도시바주식회사)는 2010년부터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2010년 파업과 직장폐쇄 이후 2011년 회사가 지원하는 새 노조가 설립되면서 KEC는 전국 최초로 복수노조 사업장이 됐다. ‘원조 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KEC지회는 소수노조가 됐다.

한때 750명이었던 노조원은 2019년 12월 현재 113명까지 줄었다. 지금 이 회사에는 노조가 3개다. 이번 커버스토리엔 창립 31년을 맞은 KEC지회의 이야기를 담았다.

회사와의 오랜 갈등 속에서도 KEC지회가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여성노동자들이 연대한 힘이 컸다. 2017년 첫 여성지회장이 탄생한 후 여성간부들이 전면에 나섰다. 비혼, 싱글맘, 워킹맘 등 다양하게 구성된 여성노조원들은 ‘흡연실’ 같았던 노조사무실을 ‘가족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바꿨고, 조합원들의 문제를 구석구석 살폈다.

2018년에는 창사 이래 계속된 회사의 남녀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 지난 7월 인권위에서 차별시정권고결정을 받았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민사·행정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겼다. 법원은 회사 전·현직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소수노조가 돼 교섭권도 없지만, 임단협에 나서는 이들의 투쟁과정은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깃발, 창공, 파티>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로 상영됐다.

이들에게 2020년은 반격의 해가 될까. 생활고를 감내해가면서도 ‘노조’를 지키고 회사와 계속 싸우는 이유가 뭘까. 지난 12일 경북 구미에서 KEC지회 조합원들을 만났다.

◆다 나가라? “벗어날 길 ‘퇴사’뿐이었지만 3년간 불과 5명 떠나”

노조는 60여명의 조합원들이 3년 동안 매달 최저임금만 받고 월급을 압류당하며 회사가 청구한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액 30억원을 지난 7월 모두 갚았다. 사진은 월급 일부가 압류된 이종희 조합원의 2017년 1월 급여명세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KEC지회 제공

■ 3년, 30억, 그들이 회사에 돈을 낸 이유

2011년 3월 회사는 노조에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301억원. 소장에는 노동조합(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KEC지회)뿐 아니라 88명의 조합원이 피고로 적시됐다. 노조나 노조 간부 외에 일반 조합원 개개인에게까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노조는 5월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2016년 9월 법원에서 조정이 성립됐다. “피고들은 연대하여 2016년 10월10일부터 2019년 9월10일까지 30억원을 변제한다”는 내용이었다.

KEC, 노조 파업에 손배소 제기
30억 조정안 나오는 데 5년6개월
조정 기간 조합원들 반대 목소리
“파업 불법이라 인정하는 모양새”
당시 부지회장이었던 이미옥씨
“조정 결정 한 달 지옥 같은 시간”

이 조정안이 나오기까지 5년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회사가 청구금액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청구금액은 301억원에서 156억원으로 바뀌었고, 법원 감정 결과 70억원까지 줄었지만 여전히 노조가 부담하기엔 엄청난 액수였다. 법원은 판결 대신 조정을 택했다. 조정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노조 안팎에선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판결이 아니라 조정을 받아들일 경우 노조가 파업이 불법이었다고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 “손해배상 소송은 회사가 노조를 압박하려는 수단인데, 나쁜 선례를 남겨선 안된다” 등의 의견이었다. 더 큰 금액이 나오더라도 끝까지 싸우자는 목소리도 많았다.

당시 노조 부지회장으로 법원 조정 과정에 참여한 이미옥씨(49)는 조정 결정 전 한 달을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받을 충격이 눈에 보여서 이걸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저녁마다 울었어요. 그런데 판사가 얘기하더라고요. 판결을 내리게 되면 최소 50억원 이상이 선고될 거다. 계산을 해봤어요. 조합원들의 월급을 압류해서 1년 동안 낼 수 있는 최대 금액이 10억원이에요. 근데 50억원 이상이 선고되면, 1년에 이자도 못 갚겠더라고요.” 회사가 노조뿐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소송을 걸었기 때문에 특정 몇 명을 찍어서 금액을 부담시킬 수 있다는 불안한 관측도 돌았다.

노조 측을 대리한 장석우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가 노조원들을 설득하러 세 번이나 구미에 내려갔다. 이미옥씨는 말했다. “변호사님이 마지막엔 화를 내시더라고요. 조합원들 다 죽일 생각이냐고요. 회사가 판결대로 집행해버리면 노조원들은 퇴사하고 노조는 와해될 거라고요.”

2016년 7월. 노조 지도부는 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여름휴가라도 마음 편하게 다녀오게 하려고, 휴가 이후에 발표를 했어요. 8월쯤인가. 충격받아서 아무 말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뭘 잘못했는데 조정안을 받아야 하느냐. 압류당하더라도 차라리 재판을 받자’고 한 사람도 있었고. ‘다 같이 3년 동안 잘 참아보자. 빨리 갚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 사람들도 있었고요.” 이종희씨(38·현 지회장)는 “2010년 파업 이후 조합원들이 가족 같아졌거든요. 가정 사정을 너무 빤히 아는 거예요. 저 사람은 아픈 부모님 병원비를 대고 있고, 저 사람은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고, 저 사람은 빚이 얼만데…그런 게 다 보이니까 미치는 거죠”.

한정희씨(46)는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노조 사무실에서 나가서 차를 탔다. 차를 타자마자 음악을 틀고 30분 동안 큰 소리로 울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돈 들어갈 데가 천진데 이래 갖고 어찌 살지 싶었어요.” 남편이 실직하고 허리까지 다치면서 한씨는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누구도 정말 회사에 돈을 갚아야 할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노조원들은 지도부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소송이 장기화되는 동안 피고 중에 해직자와 퇴사자가 나오면서 실제 돈을 갚는 사람 수는 61명으로 정리됐다. 민사집행법상 압류할 수 있는 최고 금액인 150만원을 초과하는 임금이 매달 압류됐다.

채무자 61명·월급 일부 압류 3년
손배대상자 아닌 사람들도 ‘기금’
올 7월 여름휴가비 압류 끝으로 법원
기간보다 2개월 빨리 ‘청산’
“여전히 손배에 동의할 수 없지만
이 과정서 조합원 더 끈끈해져”

‘채무자’ 61명의 수는 매달 조금씩 바뀌었다. KEC는 기본급이 낮은 편이어서, 한 달 실수령액이 150만원이 안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런 달은 압류에서 제외됐다. 어떤 달은 61명이, 어떤 달은 39명이 돈을 갚았다. 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퇴사’였다. 그러나 3년 동안 자발적 퇴사자는 다섯 명에 불과했다. 그중 두 명은 150만원으로는 생활할 수 없어 다른 일을 찾기 위해 퇴사했다. 다른 세 명은 가족의 전근, 육아 문제 등으로 원래 퇴사할 계획이었지만 ‘의리’를 저버리지 못해 1년 이상 함께 돈을 갚은 뒤에야 퇴사했다.

61명의 사정은 제각각 달랐다. 카드빚을 내고 집을 팔거나 전세금을 뺐다. 아이들은 학원을 끊었고, 과자값 하나도 쉽게 쓰지 못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미옥씨는 “다들 처음 겪는 일이니까 놀라서 급하게 돈을 마련하려고 집을 팔다 사기를 당한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정희씨의 딸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학원비를 벌었다. 한씨의 남편은 화물차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3.5t 트럭엔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허리 아픈 사람이 돈 아낀다고 차에서 앉아서 자는 거예요. 밥도 안 사먹고 집에 있는 과일이나 빵 가지고 나가서 그걸로 해결하더라고요.”

월급날 즈음엔 공장 안의 분위기가 미묘했다. 소송을 당하지 않은 이들은 그들대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이미영씨(39)는 “월급 나오기 하루 전에 명세서가 나오는데, 옆에 압류대상자가 있으면 미안해서 열어보질 못했다”고 말했다. “상여금 받는 달이면 얼마나 받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러질 못했죠. 작은 말에 서로 상처받을 수도 있고, 나도 힘들지만 더 힘든 사람들을 봐줘야 하고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아니까요. 월급날 즈음엔 서로 짠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미영씨처럼 손배대상자가 아닌 사람들 중 일부는 자발적으로 월급의 일부를 기금으로 내놓았다. 최소 20만~50만원까지 노조 계좌(CMS)로 매달 돈을 보냈다. 이종희씨는 “저희는 매달 최소 150만원은 지켰지만, 이미영씨처럼 자발적으로 낸 사람들 중에는 우리보다 더 적게 받으며 버틴 달도 있었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민주노총에서도 모금활동을 했다.

2019년 7월 여름휴가비 압류를 끝으로 노조는 30억원을 모두 갚았다. 법원에서 정한 기간보다 2개월이나 빨랐다. 30억원 중 임금압류로 갚은 금액이 97.15%, 기금(모금활동)으로 갚은 액수는 2.85%였다.

이종희씨는 말했다. “여전히 우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냈다는 생각을 해요.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더 끈끈해졌고요. 정말 큰 산을 넘었잖아요. 회사가 정말 30억원이 꼭 필요해서 우리에게 청구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노조를 압박하려는 수단이죠. 우리가 갚아버렸으니, 더 이상은 손해배상으로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겠죠.”

■ 여성 기숙사 침입, 긴 싸움의 시작

KEC의 노사관계는 2010년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그해 6월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이 결렬됐고, 노조는 부분파업을 시작했다. 당시 파업의 원인과 과정을 두고는 노사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노조는 “매년 하는 평범한 임단협이었고 금방 체결될 줄 알았는데 회사가 다른 때와는 달랐다. 교섭자체를 거부했다”고 기억했다. 노조 측 장석우 변호사는 “회사가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쟁의행위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노조가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한도·2010년 7월 노조법 개정으로 유급노조전임자의 수가 줄게 됐다) 시행에도 노조전임자 수와 처우를 현행대로 유지해줄 것을 요구해 교섭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협상 초기에는 타임오프 시행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지만 곧 철회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6월21일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임단협으로 촉발된 노사 갈등
사측, 여성기숙사에 용역 투입
여직원들 끌어내고 직장 폐쇄
교섭 중단…노조, 공장점거 농성
모멸감 주는 회사의 ‘반인권교육’
명심보감 등 읽게 하며 시험 보고
시험 답 합쳐보면 ‘다·나·가·라’

6월30일 오전 3시. 황미진씨(37)는 “여성 기숙사에 남성 용역들이 들어왔다”는 동료의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기숙사 앞에는 시커먼 옷을 입은 용역 600여명이 직원들의 진입을 막았고, 기숙사 안에서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렸다. 용역들은 그날 오전 1시에 여성 기숙사에 들어갔고, 회사는 오전 3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자고 있던 여직원들은 물건도 챙기지 못한 채 잠옷차림으로 끌려나왔다. 성추행 사건도 발생했다. 조합원들은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미옥씨는 말했다. “제가 1988년에 입사했어요. 노조 활동엔 관심도 없었고요, 주말에도 회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나가서 일했어요. 휴일 수당 같은 거 청구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파업했다고 새벽에 맨발로 끌려나와 울고 있는 동료들 모습을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은 거예요. 내가 사랑하는 회사가 이럴 리 없는데…너무 놀랐어요.”

교섭은 중단됐다. 노조는 10월21일 공장점거 농성을 시작했다가, 11월3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점거를 해제했다. 공장점거가 끝난 뒤에도 직장폐쇄는 해를 넘겨 2011년 6월까지 계속됐다. 6월13일, 회사는 직장폐쇄를 철회하고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에 대한 ‘반인권교육’을 실시했다. 회사는 7주간의 교육 동안 조합원들을 파업 가담 정도에 따라 실천반, 개혁반, 창조반으로 나누고 주황색 셔츠, 파란색 셔츠, 노란색 셔츠를 입게 했다. 교육장에는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용역들이 따라붙었고, 부채질한 횟수까지 기록했다. 회사는 명심보감 등을 읽게 하며 시험을 냈는데, 시험문제의 답을 연결해 보면 ‘다, 나, 가, 라’였다. 조합원들이 항의하자, 다음날 ‘나, 가, 라, 다’로 바뀌었다.

매일 간부들과의 면담이 진행됐는데, 퇴사를 종용받았다고 조합원들은 전했다. 이미영씨는 “교육받다 면담하러 들어가면, ‘녹음하느냐’고 물어보면서 옷의 주머니를 다 보자고 했다. 없는 걸 확인하곤 ‘당신들 절대 현장 못 돌아간다. 손배가압류 맞고 현장도 못 갈 텐데, 그냥 희망퇴직하는 게 제일 좋지 않겠냐’고 했다. 회유이자 협박”이라고 했다. 이씨는 그날 속옷 안에 소형 녹음기를 부착해 이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1년간의 직장폐쇄를 견디고도, 7주 동안 받은 모멸감 때문에 퇴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노조는 “180여명이 교육을 받았고, 7주 후 약 40명이 퇴사했다”고 밝혔다.

◆다 갚았다! “힘들고 아팠지만, 자부심 있게 싸웠고 일자리를 지켜냈죠”

KEC지회(노조)는 2017년 첫 여성지회장이 탄생한 후 여성조합원들이 주축이 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달 말 2년간의 임기를 마치는 이종희 지회장, 황미진씨, 이미영 여성부장, 이미옥 수석부지회장. 10년 동안 파업과 직장폐쇄, 손배압류 등을 함께 겪어낸 이들은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른다. 구미 |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노조는 2010년 임단협 결렬부터 시작된 이 모든 과정이 회사의 계획된 ‘노조 와해 작전’이라고 보고 있다. 노조의 주장 중 일부는 재판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회사가 만든 ‘직장폐쇄 대응방안’(2010년 8월18일 작성)에는 현 노조 집행부를 퇴진시키고 친기업 성향의 집행부를 구성하며 징계와 희망퇴직을 통해 인력구조를 개선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또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2011년 2월24일 작성) 문건에는 파업자의 회사 복귀를 차단해 전원 퇴직을 원칙으로 하고, 자발적 퇴직자가 기준에 미달할 경우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친기업 성향의 노조를 설립한다는 내용도 기재돼 있다.

이 문건의 내용들은 실제로 진행됐다. 2011년 7월1일, ‘KEC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의 기업노조가 설립됐다. KEC는 최초의 복수노조 사업장이 됐다. 관련 문건을 작성한 회사 측 관리자 4명은 실제 노조원들에게 사직서와 조합원탈퇴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해 2015년 법원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파업 참가자들과 ‘원조 노조’에 대한 회사 측의 압박은 계속됐다. 2012년 2월 회사는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75명을 정리해고했는데, 이들은 모두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이었다. 노조가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며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하자, 회사는 정리해고 3개월 만인 2012년 5월 정리해고를 철회했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철회한 후에도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회사의 해고행위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2017년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 남녀 차별? 노조 간 차별?

2010년 파업 이후 단행된 두 번의 정리해고는 모두 철회됐고, 3년간의 ‘끔찍했던’ 손해배상 압류도 끝났지만 노조는 여전히 회사와 싸우고 있다. 노조는 ‘남녀 차별’과 ‘노조 간 차별’ 문제로 회사와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2018년 임금·승진에 있어 누적돼 온 남녀 차별에 대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2019년 7월 “오랜 기간 누적된 생산직 여성 근로자들의 승격에서의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적극적 조치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회사는 오랫동안 여성의 승진을 제한했다. 인사등급은 호봉제 대상자(J1, J2, J3, S4, S5)와 연봉제 대상자(M, L1, L2)로 나뉘는데 S등급부터 관리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생산직 여성 직원은 151명 전원 J등급에 묶여 있다. 남성은 202명 중 20명만 J등급이고 182명(90.1%)이 S등급 이상이다. 특히 20년 이상 재직한 사람들 가운데 J1등급으로 입사한 생산직군 직원 108명 중 남성 56명은 모두 S등급으로 승격했지만 여성 52명은 모두 J등급이다. 특히 2010년 이후 신규 채용된 181명 중 남성은 모두 J2등급 이상을 부여받았으나, 여성들은 J1등급을 부여받았다.

3년간의 손배 가압류 끝났지만
남녀차별 문제로 여전히 투쟁 중
남자 후배가 과장·부장 달 동안
30년 넘게 사원인 여성 직원도
인권위의 ‘차별 인정’ 근거로
회사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1988년 입사한 이미옥씨는 2019년 12월 현재 여전히 J3말호봉(KEC는 한 등급을 51개 호봉으로 나누고 있다)에 머물러 있다. “제가 하는 일이 단순반복 업무라서 승급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출하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데 제 업무가 단순반복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관리자가 퇴사하면서 그 사람이 하던 일까지 제가 했거든요. 근데 한 번은 창고에서 제품 상자 나르는 남성이 S등급을 받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화를 냈어요. 업무의 문제가 아닌 거잖아요. 그랬더니 간부가 그랬어요. 남자는 가장이니까 이해해주라고요.” 이씨는 말했다. “저도 오랫동안 남녀 차별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어차피 저 승진 안되면 J1에 있는 다른 동생들(여성 직원들)이나 J2로 올려주세요, 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참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거죠. 제가 일을 가르친 남자 후배는 지금 과장님, 부장님이 됐는데 저는 30년 넘게 이미옥씨로 남아 있는 거예요. 30년 근속했는데 제 월급이 174만5000원이에요.”

2017년 첫 여성지회장이 나온 이후, 노조는 남녀 차별에 관한 데이터를 모았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회사는 인권위에 낸 답변서에 이렇게 답했다. “경정비 업무는 설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며, 설비 부품을 자주 운반하여야 하는데 무겁기 때문에 여성 근로자들이 하기 어렵다.” “관리자의 경우 전체 공정의 이해와 함께 설비에 대한 기본지식이나 경험이 있어야 하므로 관리자가 될 수 있는 S등급 이상으로 승격하려면 경정비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인권위는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는 지난 7월 “회사는 생산직 제조직렬의 경우 남녀 구분 없이 3조 3교대로 운영되고 있고, 작업조건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없으며 책임이나 노력의 정도 또한 실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회사가 여성 근로자는 ‘숙련도가 필요하지 않은 단순반복 작업에 적합’하거나 ‘위험하고 무거운 부품을 관리하는 업무는 담당하기 어렵다’는 성별 고정관념 및 선입견에 기인하여 여성 근로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노조는 인권위 결정을 근거로 지난 10월 회사를 상대로 남녀 차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KEC 인사담당자는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이 있어 취업규칙과 인사규칙을 보완할 계획이고 여직원들에게 교육기회도 제공할 것”이라며 “이런 내용을 담은 답변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임금과 승진뿐 아니라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굳어진 차별문화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종희 지회장은 “예를 들면 우리 회사는 반도체공장이라 청소가 굉장히 중요한데, 남자탈의실도 여직원들이 청소했다. ‘청소=여자일’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며 “밖에서 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굳어진 일들이 많아서 우리 안에서조차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노조 간 차별 문제도 법정으로 갔다. KEC는 인사고과에서 C등급을 받으면 정기승격에서 제외되고 고과상여금 지급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된다. KEC지회 소속 조합원들은 2009년까지는 인사고과에서 C등급을 받은 횟수가 평균 0.1회 정도에 불과했지만, 2010년 이후에는 평균 1.7회로 많아졌다.

노조 간 차별 문제도 법정으로
2010년 이후 인사고과 평점
원노조 조합원엔 대거 ‘C등급’
‘무파업 타결금’ 차별 지급하기도
법원, 모두 부당노동행위 인정

2010년 파업 이후 회사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기업노조원들의 인사고과와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하다. 2014년 인사고과에서 KEC지회 조합원 138명 중 A등급을 받은 사람은 4명(2.9%), B등급은 90명(65.2%), C등급은 44명(31.9%)이었다. 기업노조 조합원의 경우 A등급을 받은 사람은 66명(23.8%), B등급은 188명(67.9%), C등급은 23명(8.3%)이었다. 회사는 기업노조원들에게만 ‘무파업 타결금’이라는 이름의 돈을 지급하기도 했다. KEC지회 소속 조합원들에게 무더기로 C등급을 주고, 성과급과 유사한 무파업 타결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법원은 모두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 법원은 “(회사의 행위가) KEC노조(기업노조)에는 이익을 주나 KEC지회에는 불이익을 줌으로써 조합원 또는 조합가입 대상자로 하여금 불이익을 받는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이익을 받는 노동조합으로 소속을 옮기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여, 불이익을 받는 노동조합의 조직 활동 및 운영을 저해한다”고 인정했다.

노조는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 판결을 근거로 2017년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고, 2019년 5월 1심에서 승소했다. 장석우 변호사는 “2012년 정리해고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전·현 대표이사 등 경영진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 10월 노조 간 승격 차별에 따른 추가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 노조의 미래, 회사의 미래

KEC 원노조 지회장 이종희씨
“조금씩 바꿔나간다는 보람 있어
후배들에 좋은 일터 물려줄 것”

여성 조합원 황미진씨
“워킹맘이나 몸이 아픈 사람도
활동할 수 있는 노조 만들어야”

KEC는 1969년 9월 ‘한국도시바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트랜지스터와 흑백TV를 생산하던 이 회사는 1974년 KEC(한국전자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고, 1979년부터 반도체 칩을 생산했다. 1997년 국내 9개 계열사, 해외 9개 현지법인을 가진 ‘KEC그룹’으로 출범했다. 본사는 서울 서초동에 있고, 주 사업장인 경북 구미 공장엔 직원 500여명이 재직하고 있다.

KEC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산업단지공단에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노조는 이 계획이 공장 부지를 상업용으로 변경해 쇼핑몰을 설립하고, 공장을 폐업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는 “구조고도화 사업에 공장폐업 의도가 있다는 것은 노조(KEC지회)의 주장일 뿐”이라며 “회사는 대표노조(기업노조)와 이미 고용안정과 관련된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종희씨는 “회사와 싸우는 것이 정말 너무 힘들고 아파서 그만두고 싶던 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노력해서 조금씩 바꿔나간다는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구미에 남은 정규직 일자리가 별로 없는데,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좋은 일터를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황미진씨는 “우리는 자부심 있게 싸웠고, 일자리를 지켜냈다”고 말했다. 황씨는 말했다. “손배가압류가 끝났지만 그동안 돈을 벌지 못했으니 아직 여러 후유증이 남아 있어요. 앞으로도 우리에게 힘든 날이 있겠죠.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어요. 그래도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서 책임감을 갖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현재 KEC지회는 지회장을 비롯,, 여성간부들이 전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황씨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몸이 아픈 사람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노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노조는 21일 3년간의 손배가압류를 견딘 조합원들을 위로하는 조촐한 송년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