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복집 사건 판례- 25년 만에 뒤집혔다
초원복집 사건 판례- 25년 만에 뒤집혔다
김희진 기자 입력 2022. 03. 24. 21:42[경향신문]
2015년 운송업체 직원 2명
식당 주인 몰래 녹음·녹화
대법도 “주거침입죄 아냐”
‘무죄’ 선고한 원심 확정
음식점에서 상대방의 대화를 녹음·녹화하기 위해 식당 주인 몰래 장치를 설치했다고 해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식당 주인 의사에 반한 도청장치 설치는 주거침입으로 판단한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에 대한 판례가 25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4일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전남 광양에 위치한 화물운송업체 직원인 A씨와 B씨는 2015년 회사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인터넷 언론사 기자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 뒤, 기자가 부적절한 요구를 하는 장면을 담으려고 식당 주인 몰래 방 안에 녹음·녹화장치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에겐 주거침입죄가 적용됐다.
1심은 이들의 행위를 유죄로 보고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일반인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들어갔다면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영업주의 의사에 반해 식당 방 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대법관 11인의 다수의견으로 A씨 등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대법원은 주거침입죄의 보호 대상인 ‘사실상 평온상태’가 침해됐는지가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의 핵심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일반인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로부터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들어간 이상, 사실상 평온상태가 침해됐다고 볼 수 없어 ‘침입’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설령 영업주가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사실상 평온상태가 침해됐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과거 ‘초원복집 사건’을 비롯한 일부 판례도 변경됐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부산 초원복집에 모여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나눈 대화가 도청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별개 의견을 낸 김재형·안철상 대법관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은 같았다.
다만 “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치는 모습’의 의미는 추상적이고 불명확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면서 “사실상 평온상태가 침해됐는지에 따라 침입 여부를 판단하더라도 거주자 의사에 반하는지를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삼아야 한다”며 근거를 달리 적용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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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복집 사건
GC04217611 |
-事件 |
Chowon Swellfish Restaurant Scandal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부산광역시 남구 황령대로492번길 30[대연동 18-8] |
현대/현대 |
차성환 |
초원 복국 사건은 1992년 12월 11일 당시 노태우(盧泰愚) 정부의 법무부 장관과 부산의 기관장들이 남구 대연 3동 소재 음식점 '초원 복국'에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이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金泳三), 민주당의 김대중(金大中), 통일국민당의 정주영(鄭周永) 삼자 구도로 진행되었다. 1990년의 삼당 합당으로 대구·경북[구 민주정의당]과 부산·경남[구 통일민주당], 충청권[구 신민주공화당]의 기반을 갖는 민주자유당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부산·경남 지역은 여전히 야당 지지세가 적지 않았고 현대그룹이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울산을 중심으로 정주영의 지지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 대구·경북 지역은 박정희(朴正熙), 전두환(全斗煥) 정권 시절 대정부 투쟁에 앞장서 온 야당 출신의 김영삼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표가 분산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민주자유당 지도부는 지역감정 유발을 선거 전략으로 택하게 된다.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 부산 초원 복국에서 김기춘 법무부 장관과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 모여서 민주자유당 후보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와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하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는데, 이 내용이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에 의해 도청되어 언론에 폭로되었다.
이 비밀 회동에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같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이 나왔다. 김기춘과 부산 기관장들의 ‘불법 선거 개입’ 모의와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당시 통일국민당 관계자와 전직 안기부 직원이 대화 내용을 몰래 도청해 폭로하였기 때문이다. 아파트 값을 반으로 내리겠다는 공약 등으로 보수층을 잠식하던 정주영 후보 측이 민주자유당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 등과 공모하여 도청 장치를 몰래 숨겨서 녹음한 것이었다. 민주당과 통일국민당은 민주자유당의 관권 선거와 부정 선거를 규탄하였고 김영삼 후보 진영은 위기 상황을 맞았다.
전직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검찰, 경찰, 안기부, 보안사 등 권력 기관의 고위 공직자들이 선거에 직접 개입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후 상황은 거꾸로 전개되었다. 사건 전개의 흐름을 바꾼 것은 보수 언론의 ‘김영삼 편들기’와 지역감정이었다. 당시 보수 언론은 초원 복국 사건의 본질인 권력 기관과 고위 공직자의 ‘불법 선거 개입’보다 상대 후보 측의 ‘불법 도청’을 집중적으로 부각하였다.
김영삼 후보를 노골적으로 편들다시피 한 『조선 일보』는 선거 당일인 그해 12월 18일 사설을 통해 ‘공작 정치’를 소리 높여 비판하였다. 『조선 일보』는 “이번 도청 사건은 목적과 관계없이 부도덕한 것이며 앞으로 우리 사회의 관행과 시민 생활에 적지 않은 부작용을 파급시킬 것”이라면서 “기관장 모임을 도청함으로써 국민당은 선거 전략상 호재를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공 사회와 국민 생활에 미칠 정보 정치의 악영향을 고려할 때 도청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라고 비난하였다.
같은 날 『조선 일보』는 5면 머리기사에서 김영삼 후보의 ‘부산 사건은 음해 공작 기필코 승리’라는 주장을 소제목으로 부각하기도 하였다. 또 “김영삼 후보는 ‘나는 이번 선거의 최대 피해자’라고 되뇐 뒤 ‘공명선거를 이룩하겠다는 나의 소박한 꿈에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었다’고 통탄해하였다”라고 전하였다.
초원 복국 사건으로 김영삼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면 제1 야당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지역감정을 자극시켜 영남 지역의 표는 무섭게 결집하였다. 당시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초원 복국 사건 직후, 김영삼 후보의 지지율은 원적지별로 부산·경남 출신의 경우 54.6%에서 56.3%로, 대구·경북 출신은 35.7%에서 41.3%로 급등하였다. 선거 사상 가장 악의적인 지역감정 선동 사례로 기록되는 초원 복국 사건은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고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를 계기로 ‘권력은 복국집에서 나온다’는 말이 유행하였고, 당초 예상을 벗어나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현상을 가리켜 ‘초원 복국집 효과’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1992년 12월 29일 복국집 회동을 주도한 김기춘은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주거 침입죄’가 적용된 통일국민당 관계자와 도청에 관여한 안기부 직원은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다. 또 정몽준 당시 통일국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초원 복국 사건 관련자에게 도피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초원 복국 사건은 첫째 당시 한국 사회 지배층의 국가관·윤리관·정치의식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고, 둘째 이러한 인식을 가진 세력에 의해 불법 선거 운동이 자행되었음을 드러내었으며, 셋째 사건 자체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라는 의혹이 있을 만큼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에 강한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초원 복국 사건은 불법 선거 운동을 모의한 중대 범죄보다 도청이라는 수단의 도덕성을 부각시켜 본질을 흐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어 여론을 조작한 한국 주류 언론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행태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