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과 나경원 중 누가 더 최악이냐를 묻는다면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오세훈과 나경원 중 누가 더 최악이냐를 묻는다면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21-03-07 10:15:17
수정 2021-03-07 10:27:29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오세훈과 나경원 중 누가 더 최악이냐를 묻는다면 - 민중의소리 (vop.co.kr)
개인적으로 별 관심이 없었던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끝났다.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오세훈 후보가 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선출됐다고 한다. 나는 ‘누가 돼도 도긴개긴’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는데, 언론에서 “예상 밖 승리”라고 쓰는 것을 보니 나경원 후보가 탈락한 것이 이변은 이변이었던 모양이다.
기사에 따르면 나 후보의 친일, 극우 이미지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반면 오 후보는 상대적으로 중도적 이미지를 잘 지켜온 덕에 막판 역전승을 이끌어 냈다는 분석이다.
이 분석들을 쭉 보아하니 진보 쪽 사람들은 확실히 오 후보보다 나 후보를 훨~~~씬 더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하긴, 내 주변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술자리에서 나 후보 욕하는 경우는 자주 접해도, 오 후보 욕하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오 후보가 좋아서라기보다 그만큼 나 후보 및 그쪽 당 기타 등등 사람들이 욕먹을 짓을 워낙 많이 한 탓이리라 짐작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둘 중 누가 더 싫으냐?”라고 직접 묻는다면, 나에게 이 답은 전혀 간단치 않다. 왜냐하면 경제 기자인 나는 아무래도 정치인의 경제관과 경제적 업적을 먼저 살필 수밖에 없는데, 나 후보의 경제적 업적(응?)은 헛소리가 대부분인 반면 오 후보는 서울시 무상급식 반대라는 실로 굵직한 헛발질을 역사책에 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중 누가 더 싫으냐?”라는 질문은 나에게 “박정희와 전두환 중 누가 더 혐오스럽냐?”는 질문만큼 어렵다. 마지막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데 이 칼럼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했다. 그냥 비긴 걸로 합시다. 무승부!
성공과 실패에 대한 잘못된 미신
내가 오 후보의 초등학교 무상급식 반대를 극도로 혐오하는 이유는, 가난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아이들에게 가난을 입증할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반대는 “아이들아, 너는 어떤 부모를 잘 못 만나서 어떻게 가난한지 입증해 오렴”이라고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실로 오만하고, 실로 잔인하며, 실로 비인간적인 짓인데 오 후보는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이 짓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려 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오세훈 후보가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부산시장 후보 경선 결과 발표회에서 후보 수락 인사를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가난을 입증하면 도와주겠다”는 짓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것을 떠나, 그런 사고의 철학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40여 년 동안 극악의 빈부격차를 유발한 신자유주의의 출발은 “가난은 인격의 결함이다(poverty is a personality defect)”라는 영국 총리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의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대처는 가난을 철저히 개인의 무능 탓으로 돌렸고, 부(富)의 축적은 곧 그 사람의 우수한 인격 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이 말이 맞는다면 부자는 우수한 인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부자 중 80% 이상은 그냥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10인’에 선정된 캐나다의 작가 말콤 클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인류 역사상 비범한 성공을 거둔 이들의 공통된 비결은 운이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운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성공도 제대로 분석이 되지 않는다. 매년 성공학에 관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데, 내용이 매년 바뀌는 이유도 이것이다. “성공에 이르는 비법은 운이에요!”라고 말해서는 책이 팔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성공을 한 사람들도 자기가 왜 성공했는지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운도 실력이야”라거나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야” 뭐 이런 멍멍이 소리(feat 최유라)다.
작작 웃겨라. 운이 왜 실력이냐? 운은 운일 뿐이다. 부모 잘 만난 게 왜 실력이냐? 네가 그 잘난 부모 만나기 위해 단 1센티미터라도 노력한 게 도대체 뭐가 있다고?
‘불쌍하고 얌전하고 부족하게’ 보여야 사는 사람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가난을 입증하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다. 특히 아이들에게 이런 짓을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도대체 초등학생들은 뭘 잘 못해서 가난하다고 주장할 참인가? 운이 나빠서? 부모를 잘 못 만나서? 이게 가난의 정당한 이유랍시고 떠든다면 그건 경제학도, 학문도, 뭣도 아니다.
그런데도 오 후보는 아이들에게 “가난을 입증하라”고 강요했다. 이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18년 한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아이가 분식집에서 돈까스를 먹었는데 그 모습을 본 한 시민(이라고 쓰고 ‘또라이’라고 읽어야 함)이 사회복지센터에 전화를 걸어 불만 가득 찬 목소리로 항의를 했단다. 항의의 내용이 이렇다.
“아이들이 기초수급을 받는 것은 좋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좋은 집에서 먹어야 할 일이냐? 기분 좋게 점심 먹으러 갔다가 기분을 잡쳤다. 제 누나와 둘이 와서 하나를 나눠 먹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한 메뉴씩 시켜서 먹고 있더라. 식권이 얼마씩 나가기에 내 세금으로 낸 돈이 그냥 분식집에서 먹어도 똑같이 배부를 일을 굳이 좋은 곳에서 기분 내며 먹는 행위에 들어가야 하느냐?”
이 처참한 일이 왜 벌어졌는가? 사회가 아이들에게 가난을 입증하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가난을 입증하면 특별히 선심을 써서 내가 낸 세금으로 식권을 줄 텐데, 너희들은 가난할 만한 아이들이니 돈까스를 1인분 씩 먹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야기 아닌가?
이 사례는 작가 표범 씨가 사회복지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SNS에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표범 씨는 자신 또한 이런 일을 직접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표범 씨는 집안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 중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한 학생에게 틴트를 선물했다. 표범 씨는 “아이가 고작 3,800원짜리 틴트를 받고 너무나 좋아하는 바람에 선물을 한 내가 민망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런데 며칠 뒤 표범 씨는 아이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틴트를 바르고 등교한 아이에게 선생님이 “틴트 살 돈은 있었나보네”라며 비아냥거렸다는 것이다. 표범 씨는 이 처참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글의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불쌍하고 얌전하고 부족하게’ 보여야 사는 사람들
당신은 가난의 해결자가 아니라 가난의 원인이다
가난을 입증하라고 강요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가난을 입증한 사람들은 가난하게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불쌍하고, 얌전하고, 부족하게 보이도록 강요받는다. 그 선을 넘으면 돈까스 하나도 못 먹고 입술에 틴트도 못 바른다.
더 슬픈 사실은 돈까스를 지적한 그 (또라이) 시민이나 틴트를 비아냥거린 그 교사 같은 자들이 이 사회에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오세훈 후보는 답해보라. 당신은 이 또라이들을 양산하는데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참인가? 웃기지 마라. “가난을 입증해야 밥을 주겠다”며 가난한 아이들을 분류하려 했던 바로 당신이 이 처참한 사회를 만든 주범 중 하나다.
오 후보는 후보로 선출된 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당이 10년 전 무상급식 파동 사태로 공격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오히려 기다려지는 공격이다”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잘 못한 게 없다”는 태도를 넘어서서 자신이 한 짓에 자부심까지 뿜어낸 것이다. 나는 그 인터뷰를 보고 진심으로 구토가 나왔다.
최근 유럽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는 네덜란드 출신의 신성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이다. 인간의 선한 본성과 협동의 본능을 다룬 책 『휴먼카인드』는 최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런 브레흐만이 신념처럼 하는 말이 하나 있다. “제발 가난에 대해 아는 척 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다. 특히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가난이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일에 브레흐만은 염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그런 그가 2019년 다보스세계포럼(WEF)에 참석해 남긴 일갈은 의미심장하다.
“다보스에 모인 이들은 벌거벗은 임금님들이다. 그들은 불평등과 사회불안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그 문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트집을 잡는다.”
무슨 말일까? “이렇게 하면 가난을 해결할 수 있어!”라고 떠드는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사실 가난을 해결할 구세주가 아니라 ‘가난이라는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세훈 후보에게 이 말을 진심으로 전해주고 싶다. 도대체 당신이 뭔데, 초등학생들에게 가난을 입증하라 마라 하는가! 당신은 주제 파악부터 해야 한다. 브레흐만에 따르면 당신은 가난을 해결할 해결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든 원인이다.
그런 주제에 가난을 해결한답시고 아이들에게 가난을 입증하라 마라 했던 오 후보가 또다시 서울시장이 되겠단다. 아, 이건 정말 안 될 일이다. 나는 당신이 또 다시 서울을 그 처참한 구렁텅이로 내모는 꼴을 결단코 보고 싶지 않다.
이완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