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기억...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아십니까
미군 기지촌 여성 강제 격리한 감금 시설... 철거 말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24.05.18 17:20l최종 업데이트 24.05.18 17:20l
잊혀진 기억...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아십니까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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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두천외국인관광특구, 보산동 미군클럽거리 조형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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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시 보산동에 가면 '외국인관광특구'로 지정된 거리가 있다. 이곳은 동두천에서 가장 큰 미군 주둔지인 '캠프 케이시'를 비롯해서 동두천 일대에 산재한 미군부대 병사들이 이용하는 클럽거리다. 이 거리를 '기지촌'이라고 불렀다. 보산 캠프 건너편, 보산역 인근 골목에는 곳곳에 '미군클럽'이 들어섰고 클럽과 함께 운영된 성매매 업소가 있었다. 미군기지 주변 마을에도 촌락 형태의 기지촌이 들어서기도 했다. 기지촌은 1970~80년대까지 한창 번성을 누리다가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차츰 쇠락했다.
동두천은 본래 이담면이라고 하는 시골 마을(동두천리)이었는데,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들어오면서 군사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미군 평택기지가 건설되면서 도시의 입지가 흔들렸다.
미군 평택기지는 '대추리 투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농민들과 시민단체의 극력한 반대에 부딪쳤지만 공권력을 동원한 정부는 미군의 새 기지 건설을 강행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미군의 단순한 재배치가 아니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국토의 균형발전과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의 미군기지를 재배치할 것에 합의했다. 미군의 평택 기지(캠프 험프리스)는 해외 주둔 미군기지 중에서 최대 규모이며 여의도 면적의 다섯 배에 달했다. '한국 속 작은 미국 도시' 수준으로 미군과 가족 등 4만 5천 명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였다. 평택기지가 들어서자 용산에 있는 미군 핵심 지휘부와 한강 이북의 미 제2사단 예하부대가 차례로 입주했다. 2021년 무렵에는 의정부 미2사단 본부와 동두천의 미군부대 역시 주력전투부대와 병력, 시설을 대부분 평택으로 이전했다.
미군에게 의존하여 살아온 동두천시는 미군이 떠나고 기지촌 상권이 몰락하면서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되었다. 생산기반이 거의 없고 미군의 소비에만 매달린 주민들의 생계가 막막해졌다. 가게들은 문을 닫고 인구수는 날로 줄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동두천시는 '소요산 확대 개발 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해 왔다.
그동안 동두천은 대북 접경지와 가까운 경기북부지역의 특성상 모든 것이 안보에 저당 잡혀 있었다. 재산권 제약은 물론이고 개발 자체가 어려웠다. 지역 상인들에겐 위기론이 현실로 다가왔다. 낙후된 '지역경제살리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한 구상안이 바로 소요산 개발이었다.
하지만 동두천은 숙박시설 부족뿐만 아니라 내세울 만한 마땅한 볼거리도 없었다. 그나마 서울에서 전철이 닿는 소요산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동두천에 머물지 않고 잠시 들렀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이었다. 이같은 실정을 바꾸고 관광객을 모으고자 관광 인프라 구축이 필요했다. 소요산 확대 개발은 그 중심 과제로 떠올랐다. 소요산 개발 예정 부지는 60만㎥으로 약 20만 평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동두천시는 개발 연구 용역을 외주업체에 의뢰했고, 지난해 12월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개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요산 입구에는 '성병관리소'가 있다. 성병관리소는 미군 기지촌(주로 미군 전용클럽,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성병 진료 및 관리를 위해 정부가 만든 시설인데, 보건 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한 여성들을 가두는 '낙검자 수용소'였다. 미군에게 성병 전염을 막고 '미군을 위해 여성들의 몸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관리한다'는 명목이었다. 이것은 사실상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강제 구금'이었다.
일명 '몽키 하우스'라고 불리던 성병관리소는 1996년 폐쇄되었다. 그리고 20년이 넘도록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 동두천 주민들은 소요산 숲속에 음산하게 남은 성병관리소 건물을 지역 이미지를 해치는 대표적인 흉물로 여겼다. 그러던 차에 소요산 개발이 진행되면서 성병관리소를 철거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주민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철거와 개발이 동두천 시민들 전체의 여론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단지 개발을 위해 성병관리소를 철거해야 한다는 것은 "저걸 보기 싫게 왜 놔두느냐?"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의 역정일 뿐이었다. 또한 개발이라는 상업적 이득에 따른 요구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 위기에 놓인 성병관리소 문제를 고민하고 동두천의 역사와 미군의 역사를 상징하는 성병관리소를 보존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경기북부평회시민행동'을 중심으로 여성, 인권, 문화단체와 시민들은 '성병관리소 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23년부터 시민토론회 개최(1~4차), 동두천 시의회 정담회, 경기도 의회 토론회, 기자회견 등을 열었다. 토론과 간담회를 통해 성병관리소 보존의 필요성과 역사문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방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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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산 입구에 방치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건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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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의 역사
사람들은 기지촌에서 매춘에 종사한 여성들을 가리켜 이른바 '양공주'라고 불렀다. 미군은 '엘로 몽키'(노란 원숭이)라고 비하했다. 기지촌은 미군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형성되었다. 기지촌 여성들은 업소에 갇혀 지냈다. 성병에 걸리면 성병관리소에 구금당했다. 기지촌은 전국 40여 곳에 달했고 동두천의 보산동과 광암동에만 최대 4000여 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있었다. 과연 그 많은 여성들이, 그 어린 나이의 소녀들과 우리의 처녀들이 모두 다 스스로 미군에게 몸을 팔러 기지촌에 들어온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인신매매나 다름없이 끌려온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강요된 매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들은 벗어날 수 없는 성 착취에 병들고, 죽고, 이름마저 버려졌다.
기지촌 역사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사회 체제로부터 소외되고 가난에 밀린 여성들을 기지촌에 모이게 한 배후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군사정권 하에서 '매춘의 정책적 장려'가 작용한 측면이 컸다. 박정희 정권은 매춘을 외화 획득과 달러벌이 수단으로 삼았다. 군사적으로도 한국은 미군의 주둔하에서 철저히 미군에게 예속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미군을 상대로 한 기지촌 매춘은 자연발생적인 일이라기보다 당시 정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군을 위한 적선기지'로 우리나라 여성들의 성을 도구로 삼은 정치사회적, 군사적 구조의 문제였다.
첫째 요인은 경제적 빈곤을 들 수 있다. 우리의 산업화는 저임금과 노동력 착취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절대 빈곤층이 생겨났고 특히 빈민과 빈농의 여성들은 매춘의 길로 전락하였다. 이런 배경에는 우리 민족의 짓밟힌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의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군사문화가 존속된 상황 속에 매춘과 결합한 미군 위안부를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국가의 방조를 넘어선 적극적인 매춘 사업으로 인해 우리의 여성들이 성착취, 성적 학대, 감금, 인권유린을 당했다. 국가가 지켜주지 않은 우리의 자국민 여성들은 한국인이 아닌, 속된 말로 '양갈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우리 땅에서 버려진 존재였다. 한마디로 기지촌 매춘의 포주는 곧 한국 정부였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동두천의 기지촌은 유지되었다. 성병관리소는 패쇄되었지만 성병관리소 패쇄를 전후하여 10년간(1992~2002년) 미군과 관련된 여러 사건들이 터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1992년 미군에게 살해당한 윤금이 살해 사건이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윤금이씨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미군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미군을 규탄하고 불평등하게 체결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운동을 벌였다.
윤금이씨의 죽음은 워낙 끔찍한 일이라서 사회 문제가 되었을 뿐 미군에게 살해당한 기지촌 여성들은 윤금이씨 외에도 11명이 더 있었다. 윤금이씨의 비참한 죽음에 분노하고 각성한 시민들은 1996년 쇠목마을 미군 사격장 반대 투쟁과 미군기지 반환 운동을 벌였다. 2002년엔 효순·미선 미군장갑차 압사 사건이 터져 또 다시 미군규탄 투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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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에게 살해당한 고 윤금이 31주기 기억의 날 추모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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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다. 현재 동두천의 기지촌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보산동 클럽들은 절반도 영업하지 않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클럽들이 운영 중에 있다. 바뀐 것이 있다면 클럽의 여성들이 한국인 대신 필리핀, 러시아, 동유럽권에서 온 외국의 여성들로 채워졌다는 것이다(2023년 약 200~300명).
이상 간략히 정리해 본 바와 같이 동두천 기지촌의 역사는 곧 미군의 역사였다. 미군의 역사는 한반도 전쟁과 분단의 역사이기도 하다. 즉 기지촌의 역사성은 단순히 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 여성들의 고통에만 있지 않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분단 체제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내 유일 아니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전쟁과 독재와 산업화의 그늘로 얼룩진 암울한 한국 현대사의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성병관리소의 보존 가치
성병관리소는 이미 사람들에게 잊힌 기억이 되었다. 관련 기록들도 폐기되거나 분실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동두천시가 1998년 4월 30일 펴낸 자료를 보면 "성병관리소는 '전염병 예방법' 29조에 의거 성병 보균자를 격리·수용 치료함으로써 성병 전염을 근절시키려는 목적으로 운영된다"고 적혀 있다(2008, 한겨레21, 제695호, 쇠창살 아래 웅크린 성병관리소).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1974년 8월 12일 동두천시에 산재하였던 민영진료소 4개소를 통합하여 개소하였다. 1980년 이전의 3년간 자료를 보면, 성병관리소 진료 실적은 1977년 성병검진 14만 6055명, 1978년 성병검진 11만 2621명, 1979년 성병검진 12만 40명이었다.
성병관리소의 주된 업무는 이른바 '낙검자' 수용이었다. 성병에 걸린 낙검자를 분리하고 치료한다는 것인데, 성병관리소는 쇠창살과 철문으로 가로막힌 감옥과 다름없었다. 많은 여성들을 좁은 방에 가두어놓고 독한 페니실린 주사를 놓는 게 전부였다. 서양의 여성들에게나 주입할 주사제 양을 체격이 작은 한국 여성들에게 과다 투여하여 페니실린 쇼크사로 죽어간 여성들이 많았다. 길을 가다 보건소 직원과 경찰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오기도 하고 미군이 지목한 업소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끌려온 여성들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만 봐도 성병관리소는 여성 인권 유린시설이었다. 그렇게 운영된 성병관리소는 운영 중단 후 지금까지 소요산 숲속에 방치된 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장소로 묻혀버렸다.
현재 남은 성병관리소는 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가 유일하다. 평택, 파주, 고양, 의정부 등의 성병관리소, 성병진료소는 도시 개발로 모두 사라지고 없다. 이젠 누구도 성병관리소의 역사를 입에 담지 않고 기지촌의 시간을 기록하려 하지 않는다. 동두천의 성병관리소가 철거되고 사라지는 것은 역사를 숨기고 영원히 지우는 행위다. 그러나 역사는 숨기고 지운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병관리소를 철거하고 관광객 유치와 시민 휴식을 위해 유원지를 만든다는 것은 동두천의 '기지촌 이미지 지우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냉전의 잔존 지역 한반도에서 동두천은 전체 면적의 40%를 미군이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병관리소 부지는 학교법인 신흥학원의 소유로 되어 있는 사유지였다. 이 때문에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지난 2023년 2월 동두천시가 신흥학원으로부터 성병관리소 부지를 29억 원에 매입하였다. 부지를 매입한 동두천시는 성병관리소 건물과 부지가 포함된 소요산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소요산 개발 계획이 실행되면 성병관리소는 지은 지 50년이나 된 '안전위험' 건물로 건축법상 철거한대도 막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성병관리소를 단지 낡은 건축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더구나 성병관리소 철거를 동두천의 부끄러운 역사 지우기로 인식해서는 더욱 안 된다.
동두천시는 개발사업비 확보를 위해 정부의 시혜를 바라기에 앞서 주권의식으로 무장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먼저 내걸어야 한다. 동두천이 기지촌의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면 오히려 평화의 도시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성병관리소는 동두천이 보여줄 수 있는 역사 회복의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동두천의 역사는 결코 부끄러운 치욕이 아니며 기지촌 여성과 성병관리소는 지나온 시대를 악착같이 살아온 증거이고 생존의 눈물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우리가 우리에게 가하는 죄악이다. 오히려 성병관리소를 역사 교육의 장소로 보존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배우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름 없는 기지촌 여성들의 무덤인 동두천 '상패동 공동묘지'는 공원화사업으로 무덤이 모두 파묘되고 없다. 나무 막대기에 숫자만 적힌 무덤, 성도 없이 간혹 '춘자'라고만 써진 무덤, 동료들이 구덩이를 깊이 파지 못하고 두세 명을 세워서 한꺼번에 묻었다는 무덤... 그런 무덤들은 전부 무연고자 묘로 처리되고 말았다. 동두천 시는 기지촌 여성들의 공동묘지에 추모비를 세워달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비용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 답이 없다.
- <2~3명 세워 같이 묻은 무덤... 잊지말아야 할 이유>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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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근 금지된 폐쇄된 성병관리소 | |
ⓒ 임성용 | 관련사진보기 |
덧붙이는 글 | 필자 임성용 시인은 (사)한국작가회의 양주지부장이며 성병관리소 보존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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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 세워 같이 묻은 무덤... 잊지말아야 할 이유
법원 '기지촌 미군 위안부는 국가 책임' 판결... 동두천 성병관리소의 아픈 역사24.05.18 17:21l최종 업데이트 24.05.18 17:21l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아십니까>에서 이어집니다.
위 토론문에서는 성병관리소가 생긴 이유를 말하고 있다. 성병관리소는 본인의 자발적 치료가 아닌, '국가에 의한 강제검사와 진료시스템 구축'이었다. 국가가 미군위안부들의 몸을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병관리소는 국가엔 그 필요성을 체계적으로 실현한 관리시설이었지만, 그곳에 갇힌 여성들에게는 일생의 아픔이 서린 수용소였다. 그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현장이 성병관리소이다.
2010년 12월 생존한 기지촌 여성들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피해사실 입증, 자료 등을 정리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2016년까지 11차에 걸친 변론 끝에 2017년 1월 20일 1심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강제격리 직접 피해자인 원고 일부에게 개인당 500만 원씩의 정신적 손해배상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8년 2월, 2심 판결에서도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국가가 기지촌 운영 및 관리 과정에서 기지촌 위안부였던 원고들을 상대로 성매매 정당화와 조장행위, 위법한 강제 격리 수용 행위'를 한 것을 인정하고 '원고 전원에게 700만 원 또는 3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2022년 9월 29일 대법원이 마침내 '국가책임을 인정' 함으로써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소송은 최종 승소했다. 8년 3개월 만에 역사적인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기지촌 여성'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것은 법원도 '주한미군 주둔으로 인한 기지촌 존재의 불가피성과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미 국무부, 육군 의무국이 특별조사관을 파견하여 한국 정부에 기지촌 여성 등록, 정기적 성병검사 강화, 성병감염 여성 격리 요구, 의약품 공급과 전문지식 제공'을 하면서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성매매를 허용'한 점을 지적했다. 소송에 나선 기지촌 생존 여성들은 이렇게 말했다.
"미군에 의한 폭행 시 경찰은 우리 편 안 들었다. 쌍욕을 하고 유치장에 가두기도
했다."
"보건소와 시청, 경찰, 미군 등이 합동 단속 나왔다. 페니실린 606호 맞고 죽은 여성도 많다."
"돈 못 벌면 포주가 밥도 안 줬다. 친정 가면 인간 대접 안 해 줬다."
성병관리소 평화적 활용에 대하여
경기도 기지촌여성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도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한국사에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건조물로서 근대건축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 동두천의 시민단체(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동두천역사문화공원추진시민모임, 동두천성병관리소보존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 등)도 동두천시에 아래와 같은 제안과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공정관광 : 지역주민의 삶을 존중하며 지역과 관광객의 만족뿐 아니라 지역과 지역주민 모두가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여행. 최근에는 지역투어, 마을투어 등으로 활성화, 메모리얼투어, 다크투어(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는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문화여행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음.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당대나 최근에 일어났던 일이라면 더욱 관심을 갖고 선호함.
새로운 로컬 스토리텔링 : 동두천만의 공간과 지역 활용도를 높이는 근대문화공간으로 활용. 동두천 내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지역을 문화여행으로 발굴 육성하여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필요성, 경기도에 근현대 문화여행 관련 조례가 없음. 경기도 내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지역을 문화여행으로 발굴·육성하여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필요성. 비극을 겪었거나 황폐화된 지역들에 관광객들이 유입되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긍정적 측면. TV, 넷플릭스, 유튜브 등에서 각종 여행관련 프로그램로 인기.
동두천만의 스토리텔링 : 스토리를 통해 그 속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 전달한다. 기지촌 이미지 역사와 시대의 관점, 지역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은 삶을 기억하고 고유한 자기정체성에 대한 긍지를 높이고 지역 주민 공동의 문화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터전을 만드는 일이다.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관광객들에게 보다 풍요로운 경험을 위한 인식, 이해, 감상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며, 관광객으로 하여금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관심과 배움을 향상시킨다. 동두천만이 갖고 있는 풍부한 근현대사의 스토리텔링은 동두천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인식의 전환을 제공한다.
그러나 동두천시는...
동두천시는 소요산 개발 연구 용역 결과 발표 전에 성병관리소 철거 또는 보존에 관한 여론조사를 했다. 시에 따르면 성병관리소 존치 여부, 주민들의 설문 결과 ▲ 철거 89.2% ▲ 보존 10.8% 등 철거를 선호하는 주민이 8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형덕 동두천 시장은 "성병관리소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철거·개발계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면밀히 검토, 흉물로 방치된 성병관리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주변 상인들 중심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만 알려주고 인원수를 확대한 동두천 시민 500명 설문조사 결과(보존 6 : 4 철거)는 숨기고 있다.
이에 성병관리소 보존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철거 반대 시민들의 입장을 동두천시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보존의 타당성과 활용의 당위성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성병관리소 보존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첫째, 기지촌 역사와 시대의 관점에서 동두천은 평화와 치유의 장소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도시이다.
둘째, 지역의 향토사 관점에서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우리의 역사를 바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셋째, 성병병관리소가 위치한 입지조건에서 소요산은 어린이박물관, 자유수호역사박물관이 있으므로 이를 연계할 수 있다.
즉 성병관리소는 기억, 현장, 보존을 넘어 교육, 인권, 문화, 역사유산의 장소로 만들 수 있다. 다른 지자체는 근현대유산을 발굴하고 지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지역 축제, 문화제의 방향도 지역의 역사 및 문화를 바탕으로 문화산업화하고 있는 추세다. 동두천의 지역사는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퇴역한 미군들의 투어 상품으로도 개발할 수 있으므로 그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
2024년 5월 17일 문화재청은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을 공표했다. 국가유산기본법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지정유산 또는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등록되지 아니한 국가유산 중 중요한 것을 시·도지정유산 또는 시·도등록유산 등으로 지정·등록하여 보호할 수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개발계획·개발사업이 국가유산 및 그 역사문화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진단하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만약 동두천시가 시장의 말대로 '면밀한' 조사와 검토 없이 성병관리소를 철거한다면 국가유산기본법에도 어긋나는 행위다. 성병관리소는 '동두천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일방적 철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병관리소 건물은 문화공원으로 계획된 주변의 부지와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콘텐츠로 결합하고 역사테마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옳다. 그것이 소비적이고 위락단지화된 개발이 아닌 진정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개발이다. 그렇게 하면 성병관리소는 동두천의 근현대 역사와 문화유산을 잇는 중심지로 거듭 날 수 있다.
빼뻘
임성용
산 아래 배밭 많아서
뱃벌이 빼뻘 되었다지만
한 번 빠지면
영원히 발을 뺄 수 없는 뻘
죽도 살도 못한 빼뻘이라고
그곳에서 너는 별을 그렸지
그곳에서 나는 땅을 그렸어
밤이면 하늘에 별만 살지
땅엔 사는 게 너무 많아
모두 다 그릴 수가 없었지
흰 배꽃 흰 나비야
어린 나비잠도 못 자고
뱀의 먹이가 되고 말았지
밤마다 독수리가 날아왔어
뱀과 독수리는 한 편이었어
나는 못 박힌 별을 임신했지
이슬 먹은 나무 꽃가지에
별이 빛나는 건 거짓말
내 별은 열다섯에 죽은 별
철조망 너머로 떨어져 내렸어
친구와 언니 셋을 묻었어
구덩이가 좁아 눕히지 못하고
관을 세운 채 흙을 덮었어
빼뻘 깊이 나무막대기를 꽂고
이름도 없이 번호를 써놓고 왔어
그날 밤 소쩍새 울고
뱃속 갈라 피 묻은 나를 꺼냈지
그렇게 태어날 수 있어도
그렇게 죽을 수 있어도
입을 갈라 나를 토해낼 수 없었어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한국전에 투입된 외국 군인은 1951년, 약 20만 명에서 1953년에는 32만 5천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국여성의 정조 관리라는 차원에서 '젊은' 외국 병사들의 성욕 관리가 주요한 문제로 떠올랐고, UN군을 이끄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전투에 지친 병사들을 위무하는 일이 전투력 유지를 위한 필수적 과제로 부각되었다. 한국 정부는 특정 장소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등록제를 실시하여 성매매 여성들에게 강제적으로 성병 검진을 받게 하였으며, 허가받은 업자와 성매매 여성들로부터 일정한 세금을 징수하였다...
1957년 이후 일련의 정부 정책으로 인해 양공주들의 구획화와 격리, 효율적 감시체계가 가능해지고 성병진료소가 미군기지 주변으로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자국 병사들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판단한 미군 당국은, 같은 해 미군의 외출과 외박을 허용한다... 한국 정부는 미군의 일본행 성매매 수요를 보다 효과적으로 국내로 돌리기 위한 방안으로 위안부들을 상대로 계몽강연회를 열었다. 각 지역의 경찰간부들이 직접 개입하여 조직하고 관리, 실행하는 형태였는데 주 내용은 성병예방 교육 및 미군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의 고양과 같은 것이었다.
- 2023.4.29.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주최 시민토론회, 동두천시 성병관리소 보존을 위한 공대위, 성병관리소의 평화적 전환과 활용
위 토론문에서는 성병관리소가 생긴 이유를 말하고 있다. 성병관리소는 본인의 자발적 치료가 아닌, '국가에 의한 강제검사와 진료시스템 구축'이었다. 국가가 미군위안부들의 몸을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병관리소는 국가엔 그 필요성을 체계적으로 실현한 관리시설이었지만, 그곳에 갇힌 여성들에게는 일생의 아픔이 서린 수용소였다. 그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현장이 성병관리소이다.
2010년 12월 생존한 기지촌 여성들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피해사실 입증, 자료 등을 정리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2016년까지 11차에 걸친 변론 끝에 2017년 1월 20일 1심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강제격리 직접 피해자인 원고 일부에게 개인당 500만 원씩의 정신적 손해배상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8년 2월, 2심 판결에서도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국가가 기지촌 운영 및 관리 과정에서 기지촌 위안부였던 원고들을 상대로 성매매 정당화와 조장행위, 위법한 강제 격리 수용 행위'를 한 것을 인정하고 '원고 전원에게 700만 원 또는 3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2022년 9월 29일 대법원이 마침내 '국가책임을 인정' 함으로써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소송은 최종 승소했다. 8년 3개월 만에 역사적인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기지촌 여성'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것은 법원도 '주한미군 주둔으로 인한 기지촌 존재의 불가피성과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미 국무부, 육군 의무국이 특별조사관을 파견하여 한국 정부에 기지촌 여성 등록, 정기적 성병검사 강화, 성병감염 여성 격리 요구, 의약품 공급과 전문지식 제공'을 하면서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성매매를 허용'한 점을 지적했다. 소송에 나선 기지촌 생존 여성들은 이렇게 말했다.
"미군에 의한 폭행 시 경찰은 우리 편 안 들었다. 쌍욕을 하고 유치장에 가두기도
했다."
"보건소와 시청, 경찰, 미군 등이 합동 단속 나왔다. 페니실린 606호 맞고 죽은 여성도 많다."
"돈 못 벌면 포주가 밥도 안 줬다. 친정 가면 인간 대접 안 해 줬다."
▲ 동두천시 상패동에 있는 기지촌 여성들의 무연고 묘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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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관리소 평화적 활용에 대하여
동두천시 성병관리소는 한국사에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건조물로서 근대건축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 경기도 기지촌여성지원 등에 관한 조례(2020. 4. 29)에 따라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시행한 기지촌여성 생활실태 및 지원정책 연구(2020. 12)
경기도 기지촌여성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도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한국사에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건조물로서 근대건축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 동두천의 시민단체(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동두천역사문화공원추진시민모임, 동두천성병관리소보존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 등)도 동두천시에 아래와 같은 제안과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공정관광 : 지역주민의 삶을 존중하며 지역과 관광객의 만족뿐 아니라 지역과 지역주민 모두가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여행. 최근에는 지역투어, 마을투어 등으로 활성화, 메모리얼투어, 다크투어(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는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문화여행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음.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당대나 최근에 일어났던 일이라면 더욱 관심을 갖고 선호함.
새로운 로컬 스토리텔링 : 동두천만의 공간과 지역 활용도를 높이는 근대문화공간으로 활용. 동두천 내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지역을 문화여행으로 발굴 육성하여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필요성, 경기도에 근현대 문화여행 관련 조례가 없음. 경기도 내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지역을 문화여행으로 발굴·육성하여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필요성. 비극을 겪었거나 황폐화된 지역들에 관광객들이 유입되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긍정적 측면. TV, 넷플릭스, 유튜브 등에서 각종 여행관련 프로그램로 인기.
동두천만의 스토리텔링 : 스토리를 통해 그 속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 전달한다. 기지촌 이미지 역사와 시대의 관점, 지역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은 삶을 기억하고 고유한 자기정체성에 대한 긍지를 높이고 지역 주민 공동의 문화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터전을 만드는 일이다.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관광객들에게 보다 풍요로운 경험을 위한 인식, 이해, 감상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며, 관광객으로 하여금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관심과 배움을 향상시킨다. 동두천만이 갖고 있는 풍부한 근현대사의 스토리텔링은 동두천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인식의 전환을 제공한다.
▲ 동두천 시청 앞, 여성·시민단체 기자회견 2023. 04. 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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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두천시는...
동두천시는 소요산 개발 연구 용역 결과 발표 전에 성병관리소 철거 또는 보존에 관한 여론조사를 했다. 시에 따르면 성병관리소 존치 여부, 주민들의 설문 결과 ▲ 철거 89.2% ▲ 보존 10.8% 등 철거를 선호하는 주민이 8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형덕 동두천 시장은 "성병관리소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철거·개발계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면밀히 검토, 흉물로 방치된 성병관리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주변 상인들 중심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만 알려주고 인원수를 확대한 동두천 시민 500명 설문조사 결과(보존 6 : 4 철거)는 숨기고 있다.
이에 성병관리소 보존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철거 반대 시민들의 입장을 동두천시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보존의 타당성과 활용의 당위성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성병관리소 보존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첫째, 기지촌 역사와 시대의 관점에서 동두천은 평화와 치유의 장소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도시이다.
둘째, 지역의 향토사 관점에서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우리의 역사를 바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셋째, 성병병관리소가 위치한 입지조건에서 소요산은 어린이박물관, 자유수호역사박물관이 있으므로 이를 연계할 수 있다.
즉 성병관리소는 기억, 현장, 보존을 넘어 교육, 인권, 문화, 역사유산의 장소로 만들 수 있다. 다른 지자체는 근현대유산을 발굴하고 지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지역 축제, 문화제의 방향도 지역의 역사 및 문화를 바탕으로 문화산업화하고 있는 추세다. 동두천의 지역사는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퇴역한 미군들의 투어 상품으로도 개발할 수 있으므로 그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
2024년 5월 17일 문화재청은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을 공표했다. 국가유산기본법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지정유산 또는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등록되지 아니한 국가유산 중 중요한 것을 시·도지정유산 또는 시·도등록유산 등으로 지정·등록하여 보호할 수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개발계획·개발사업이 국가유산 및 그 역사문화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진단하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만약 동두천시가 시장의 말대로 '면밀한' 조사와 검토 없이 성병관리소를 철거한다면 국가유산기본법에도 어긋나는 행위다. 성병관리소는 '동두천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일방적 철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병관리소 건물은 문화공원으로 계획된 주변의 부지와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콘텐츠로 결합하고 역사테마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옳다. 그것이 소비적이고 위락단지화된 개발이 아닌 진정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개발이다. 그렇게 하면 성병관리소는 동두천의 근현대 역사와 문화유산을 잇는 중심지로 거듭 날 수 있다.
▲ 성병관리소 보존을 위한 시민문화제, 2023. 10. 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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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뻘
임성용
산 아래 배밭 많아서
뱃벌이 빼뻘 되었다지만
한 번 빠지면
영원히 발을 뺄 수 없는 뻘
죽도 살도 못한 빼뻘이라고
그곳에서 너는 별을 그렸지
그곳에서 나는 땅을 그렸어
밤이면 하늘에 별만 살지
땅엔 사는 게 너무 많아
모두 다 그릴 수가 없었지
흰 배꽃 흰 나비야
어린 나비잠도 못 자고
뱀의 먹이가 되고 말았지
밤마다 독수리가 날아왔어
뱀과 독수리는 한 편이었어
나는 못 박힌 별을 임신했지
이슬 먹은 나무 꽃가지에
별이 빛나는 건 거짓말
내 별은 열다섯에 죽은 별
철조망 너머로 떨어져 내렸어
친구와 언니 셋을 묻었어
구덩이가 좁아 눕히지 못하고
관을 세운 채 흙을 덮었어
빼뻘 깊이 나무막대기를 꽂고
이름도 없이 번호를 써놓고 왔어
그날 밤 소쩍새 울고
뱃속 갈라 피 묻은 나를 꺼냈지
그렇게 태어날 수 있어도
그렇게 죽을 수 있어도
입을 갈라 나를 토해낼 수 없었어
덧붙이는 글 | 필자 임성용 시인은 (사)한국작가회의 양주지부장이며 성병관리소 보존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