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1700㎞ 완주 뒤, 설악 아씨는 왜 느려졌나
히말라야 1700㎞ 완주 뒤, 설악 아씨는 왜 느려졌나 | 중앙일보 (joongang.co.kr)
“내 신발에 끼워.”
툭. 한국에서 온 남자는 아이젠을 포터 앞에 던졌다. 포터는 순간 멈칫했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아이젠을 채워줬다. 여자는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분노의 격류가 일었다. 자신이 아무 말도 못 했던 것에 더 화가 났다.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히말라야의 가이드·포터·쿡은 내가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가는 사람, 동행자라고.

'설악 아씨' 문승영씨가 2014년 4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GHT ·히말라야 횡단 트레일) 하이루트의 칸첸중가·마칼루 지역 경계인 룸바삼바 라(고개)를 지나고 있다. 문씨는 해발 5159m인 이곳에서 동행한 예비 신랑으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았다. [사진 문승영]
‘설악 아씨’ 문승영(40)씨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GHT·히말라야 횡단 트레일) 하이루트 1700㎞를 우리나라 최초로 완주했다. 구간별 동행한 한국인도 있었지만 풀 루트는 문 씨가 처음. 2014년 4월 첫발을 디디며 5차례, 총 138일에 걸쳐 2018년 1월 마무리했다. 6000m 안팎 고도가 이어지며 낙석·빙하·설산 지대가 숨 돌릴 새 없이 널려 있다. 크레바스도 곳곳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암벽·빙벽·설상 등 전문 등반이 필요한 구간이 많다. 문 씨가 넘은 고개의 고도를 합치면 약 12만m다. ‘익스트림 루트'로도 불린다. 그래서 네팔 정부와 관광청은 그녀에게 완주 인증서까지 내줬다. 현지 언론에서도 ‘위대한 한국인’이라며 크게 다뤘다. 문 씨는 GHT 종주 첫 40일의 기록을 지난 15일 『함께, 히말라야』로 냈다.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 하이루트.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메인 가이드와 쿡은 동급으로, 서열상 가장 위다. 메인 가이드 밑의 보조 가이드는 쿡 밑의 쿡보이보다 위다. 포터는 쿡보이보다 아래다.

문승영씨가 2014년 3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GHT) 하이루트의 칸첸중가 낭고 라에서 스태프들과 활짝 웃고 있다. 문씨는 스태프들에 비해 좋은 장비를 갖춘 게 미안해 트레킹 내내 '내가 너무 많이 가졌구나'라며 자책했다고 한다. [사진 문승영]
히말라야의 가이드와 포터들은 트레커와 고산 등반대가 주는 도움으로 삶을 이어간다. 네팔에서 2015년 4월 25일 발생한 지진으로 9000여 명이 사망했고 50만 가구 이상이 쑥대밭이 됐다. 트레커와 고산 원정대는 이 해 전무하다시피 했다. 관광업이 무너지며 네팔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2013년 671달러, 2015년 732달러의 상승세(9.2%)에서 2016년 730달러로 떨어졌다.
# 번쩍 번개가 치자 김 모락모락 나는 예비 신랑(남편)의 용변이 눈에 들어왔다. 문 씨는 하늘 보며 웃어젖혔는데, 다시 머리 위에서 번쩍. 남편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코미디인지 납량특집인지 경계가 흐릿한 이 장면은 2014년 4월 문 씨의 GHT 종주 초반에 벌어졌다.

문승영씨 일행이 2014년 4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GHT) 하이루트의 동쪽 칸첸중가에서 서쪽 마칼루 쪽으로 향하고 있다. 닷새가 걸리는 이 구간은 민가가 없어 그야말로 고립무원 지대다. [사진 문승영]
중·고등학교 때 육상과 카누를 했다. 지리교육학과를 나와 학원 강사로 뛰었다. 그녀는 “믿는 구석은 히말라야뿐”이라며 직장을 때려치웠다. 결혼 약속한 남자와 작당을 했다. GHT는 미리 가는 신혼여행지였다. 혼수비용을 탈탈 털었다. 예비 신부는 섭외·정보를, 예비 신랑은 일정·촬영을 맡았다. 2014년 3월 16일 작전 개시. 예비 신랑은 5156m 룸바 삼바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행복은 잠시, 크고 작은 위기가 이어졌다.
그녀는 고민이 많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럴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알량한 돈으로 자신의 짐을 지게 하는 게 옳은가, 짜파티(얇게 편 밀가루 반죽을 구운 빵) 몇 장으로 끼니를 때우는 포터들 앞에서 전투식량을 꺼내는 게 맞나 싶었단다. 그녀의 선택은 나눔이었다.

2014년 4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GHT) 하이루트 트레킹 중 체감 영하 20도의 히마라야 웨스트콜 근처에서 비박 뒤 바룬체 베이스 캠프로 향하는 문승영씨 일행. [사진 문승영]
# 문 씨는 지난 10월 5일 설악산 마등령으로 뛰었다. 50대 남성은 저체온증에 떨고 있었다. 이 등산객은 그날 내린 46.4mm의 비를 그대로 맞았다. 문 씨의 이 날 출동은 외설악구조대원으로는 처음. 외설악구조대를 비롯한 대한산악구조협회 구조대원들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설악 아씨' 문승영씨가 지난 11월 11일 설악산 권금성에서 공룡능선 쪽을 바라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1월 11일 설악산 비룡폭포로 향하는 현수교 앞에서 포즈를 취한 문승영씨. 김홍준 기자
문 씨는 히말라야를 11번 찾아 총 3500㎞가량 트레킹을 했다. 출발점은 태백산이었다. 그녀는 "28세에 친구와 겨울 태백산에서 기고 구르며 올라갔다가 내려오니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인두처럼, 산이 가슴에 찍혔다. 닥치는 대로 산에 드나들었다. 고향 속초의 친구들이 ‘오늘도 산이냐, 이 설악 아씨야’라며 종종 농을 건넸다. ‘설악 아씨’라는 별명은 이때 생겼다. 문득, 우리나라 산에 관해 묻고 싶었다.
문 씨와 지난 11일 설악산 비룡폭포까지 걸은 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녀는 “이렇게 느릿느릿 40년은 더 돌아다닐 것”이라며 “천천히 가면 더 보게 된다. 히말라야에 다녀올수록 빨리 가야겠다는 경쟁심은 점점 사라지고 사람이 보이더라”고 말했다. 공룡능선이 천천히 해를 삼키고 있었다.
설악산=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