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단체는 적, 약점을 잡아라"..서울교통공사 '충격' 내부문건
이준엽 입력 2022. 03. 17. 13:10[앵커]
최근까지 한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면서 지하철 투쟁을 벌였는데요.
시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비판 여론도 있었지만, 이들 편의를 위해 노력해야 할 서울교통공사가 단체를 사실상 '적'으로 규정하고, 대 언론 홍보 전략에만 몰두해서는 안 되겠죠.
그런데 YTN이 입수한 내부 문건에는, 서울교통공사의 이 같은 불편한 인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사건 취재한 기자 연결해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이준엽 기자!
우선 이번 문건에서 언급된 장애인 단체와 시위,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네 문건에서 '맞서 싸워야 할 상대'로 언급한 단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줄여서 전장연이라는 곳인데요.
올해 설날쯤부터 본격적으로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시위를 23차례 벌였습니다.
지하철 지연이 잦아지다 보니 시민들 반발도 심한 편인데요.
단체가 일부 시민의 협박까지 받으면서도 시위를 벌이는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에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를 비롯한 각종 장애인 이동권 증진 약속을 올해까지 마무리하기로 했고요.
지난 2002년에도 2004년까지 모든 역 엘리베이터 설치를 공약했지만 흐지부지됐던 겁니다.
단체의 주장 직접 들어보시죠.
[박경석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 이동을 못 하니까 교육받지 못한 거에요. 교육받지 못했으니까 별로 일할 기회도 없었고. 같이 좀 살면 안 되겠습니까? 이거는 국가 책임인 거에요.]
[앵커]
그러면 이 시위에 서울교통공사 측은 어떻게 대응을 하고 있었습니까?
[기자]
네 공사는 지난해 12월 아예 시위가 예고된 혜화역의 엘리베이터 운행을 중단하는 식으로 맞불을 놓은 적이 있었는데요.
시민들의 강한 항의를 받자 시민 불편을 줄이려는 목적이었다며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사가 홍보팀 직원 이름으로 부적절한 내용이 담긴 대응문건을 만든 점이 YTN 취재로 확인된 겁니다.
문건 곳곳에 '언더도그마'란 말이 등장하는데요.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의미입니다.
문건은 언론은 물론 대중도 여기에 경도돼 원칙과 절차가 유명무실해졌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있는 요구를 마치 약자의 '떼쓰기'인 마냥 평가하는 태도가 매우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앵커]
구체적인 여론전 전략도 언급되어 있다면서요?
[기자]
네 문건은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대외적으로는 우리도 이동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싶지만, 약자를 이해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자세를 보이라 합니다.
하지만 뒤로는 장애인단체의 '선 넘는 미스', 그러니까 잘못을 찾아내 '물밑 홍보'하자고 합니다.
이런 전략을 실제로 수행했다는 증거를 YTN 취재진이 입수했습니다.
문건에 적힌 '장애인 단체의 실점 사례'입니다.
시위자들이 승강장 틈새에 휠체어 바퀴를 일부러 끼워 넣었다는 '고의 운행 방해설'인데요.
상식적으로 휠체어 탄 사람이 틈새를 일부러 벌려서 끼워 넣기가 불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당시 서울교통공사 홍보팀이 YTN을 비롯한 언론사에 '출처는 밝히지 말아달라'며 보낸 시위 관련 메시지를 보면요.
사진을 보내면서 틈이 매우 넓어 바퀴가 낀 아찔한 상황을 일부러 끼워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문건은 장애인 단체의 '결정적 미스'라면서 '할머니 임종, 버스 타고 가세요.' 사건을 거론하기도 하는데요.
지난달 9일 시민이 임종을 봐야 한다며 울분을 토하고, 시위자는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답했다며 반대 여론이 격화한 일을 가리킵니다.
그 뒤 시위자는 시민에게 본인도 얼마 전 장애인을 위한 이동수단을 찾지 못해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며 사과했지만 논란의 장면만 편집돼 돌아다니는 상황입니다.
당시 영상, 직접 보시죠.
[이형숙 / 서울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 (당시 영상) : (저도) 그런 걸 당해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저도 그래서 임종을 못 봤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문건은 이 사건의 경우 아예 고객센터를 통해 내용을 직접 확인한 뒤 보도자료에 포함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실제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민원 내용과 지하철 이용량 감소 통계를 제시하면서 '임종 사건'도 시민 피해 사례로 거론합니다.
앞뒤 맥락을 자르고, 시위대를 악마화하는 데에 공사가 거리낌 없었던 모습입니다.
[앵커]
서울교통공사는 뭐라고 해명하나요?
[기자]
네 서울교통공사 측은 작성자인 직원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홍보팀 직원이 개인 자격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올린 것이고 회사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는 겁니다.
지하철 시위에 강력히 대응하지 않는 공사에 반감을 품은 직원이 많다며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공사 측 해명 직접 들어보시죠.
[서울교통공사 관계자 : 여기서 두들겨 맞고 저기서 두들겨 맞고 막아도 두들겨 맞고 안 막아도 두들겨 맞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 불만이라도 이해시키는 게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공사는 또 시위 사진은 기자들 요청으로 제공한 것뿐이고, 제공처는 장애인 단체와 갈등을 피하려고 빼 달라고 요구한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또 '임종사건'을 거론한 보도자료는 여론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앞으로 단체의 대응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기자]
우선 단체는 오는 금요일 오전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문건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일 예정입니다.
문건이 장애인 혐오를 조장하고 있는 만큼,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소지도 있는데요.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뒤 형사 고소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YTN 취재진은 문건에서 특정 언론사를 깎아내리고 입맛에 맞는 언론을 물색한 대목도 발견했는데요.
후속 보도도 이어나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사회1부에서 전해드렸습니다.
YTN 이준엽 (leejy@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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