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규제 개혁을 외치는 윤석열 전 총장에게서 이명박의 향기가 느껴진다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2021-07-12 08:44:07 수정2021-07-12 08:44:07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규제 개혁을 외치는 윤석열 전 총장에게서 이명박의 향기가 느껴진다 - 민중의소리 (vop.co.kr)
야권 유력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마침내(!)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동안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아서 이 사람이 어떤 경제관을 갖고 있나 궁금했는데 그 생각의 일단을 보게 된 것이다.
8일 윤 전 총장은 스타트업 청년 창업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규제 개혁”을 부르짖었다고 한다. “정치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방해하지 않고, 또 이런 기업 활동이 정치에 의해서 휘둘리지 않도록 많은 경각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거나 “그런 것들을 잘 살펴서 과감한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는 등 그의 발언 대부분은 규제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의 경제에 관한 첫 일성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정말 심히 걱정스럽다. 왜냐하면 이는 전형적인 한국 재벌들의 민원이기 때문이다.
민원을 들어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벌 기득권 카르텔인 국민의힘 입당을 고려하는 그가 누군가의 민원을 들어준다면 당연히 재벌들의 그것부터 챙기지, 설마 민중들의 민원부터 챙기겠나? 애초 그런 사람인 줄 짐작했으니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걸지는 않겠다.
문제는 순서가 엉망진창이라는 점이다. 모름지기 대선 후보라면 국가 경제에 대한 철학과 구상을 먼저 밝히고 그 다음 순차적으로 누군가의 민원을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런데 거창하게 정치 참여 선언을 한 윤 전 총장의 입에서 나온 첫 경제 관련 코멘트가 고작 규제 개혁이라니,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라면 전형적인 재벌들의 꼭두각시가 될 각이다.
규제란 무엇인가?
근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윤 전 총장은 규제와 정부의 시장 개입을 무슨 악마의 무기처럼 묘사했던데, 천만의 말씀이다. 시장이라는 곳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들이 모인 장소다. 경제 주체들이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자신을 위해 노력하면, 시장이 짠~ 하고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철학 아닌가?
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주장처럼 시장이 오로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의 집합이라면, 공공의 영역은 누가 지키느냐는 질문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는 대놓고 규제 개혁을 외치며 재벌들의 민원 해소에 목숨을 걸었던 전직 대통령이 있었다. 바로 이명박이다.
그런데 그 이명박이 2008년에 해양 운송사업을 활성화한답시고 선박연령(선령) 규제를 완화해 버린 일이 있었다. 당시 해운업계는 연안여객선의 사용 가능한 선령을 늘리는 것을 숙원사업처럼 여겼다. 당시 해운업체들은 “선령 규제가 지나쳐 업계가 입는 손실이 매년 200억 원이다”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8일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열린 ‘스타트업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7.08ⓒ국회사진취재단
이들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어주신다면서요?”라며 물밀듯이 민원을 제기했고, 이명박은 바로 국토해양부에 개선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 결과 6개월 뒤 국토해양부는 시행규칙을 바꿔 20년이었던 선령 제한을 30년까지 늘렸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바로 세월호 참사다. 왜냐하면 이 규제 철폐 탓에 외국에서 수명을 다한 중고 선박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왔고 그 중 한 척이 세월호였기 때문이다.
선령 규제가 완화되기 이전에는 15년 이상 노후 선박의 수입 비중은 29.4%에 불과했으나 규제를 철폐하자 노후 선박의 수입 비중이 63.2%로 폭증했다. 청해진해운이 2012년 수입한 세월호는 일본에서 퇴역하기 직전의 배였고 선령은 무려 18년이었다.
규제가 그대로 있었다면 수입해도 2년밖에 쓸 수 없는 이 배가 한국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선령 제한이 30년으로 늘어나면서 세월호는 한국에 버젓이 수입됐고,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를 낳았다.
물씬 풍기는 이명박의 향기
윤 전 총장이 그 모임에서 최우선적으로 혁파해야 할 규제로 금융 관련 규제를 꼽았다는데 이것도 진짜 웃기는 이야기다. 윤 전 총장 말이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네거티브로 바뀌고 다양한 산업 수요를 금융이 자금 중개 기능을 통해 충족할 수 있도록 많이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대로 금융이 규제 없이 자유롭게(!) 자금 중개기능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이후 월가는 미국 정부에 압박을 가해 그들의 돈벌이에 방해가 되는 거의 모든 규제를 없앴다. 그리고는 민중들의 코 묻은 돈을 더 뜯어내겠다며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요상한 상품을 만들어 팔아 치웠다.
그 결과가 바로 2008년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다. 적절한 대출 규제만 있었다면 절대로 벌어지지 않았을 일인데,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미국 정부가 규제를 난도질하는 바람에 전 세계 민중들이 최악의 경제난에 빠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탐욕으로 가득 찬 시장이 존재하는 한, 그 탐욕에 맞서 공공을 지키려는 정부의 노력 또한 시장의 탐욕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야 한다. 규제란 바로 그 공공을 지키는 정부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런데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가 경제적 세계관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대뜸 재벌들의 민원인 규제 개혁부터 이야기한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임 하나를 내던지겠다고 공약하는 꼴이다.
이 처참한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이명박의 재등장인가? 나는 이 뉴스를 보고 정말로 슬펐다. 이명박을 치운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자가 유력한 대권후보로 떠올랐단 말인가? 만의 하나 이런 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 사회는 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