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말 “합리적이고 공평한” 방위비 분담금인가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21-03-11 08:00:19
수정 2021-03-11 08:00:19
[기자수첩] 정말 “합리적이고 공평한” 방위비 분담금인가 - 민중의소리 (vop.co.kr)
정부가 10일 한미 정부 간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SMA, Special Measures Agreement) 체결을 위한 협상이 최종 타결됐다고 밝혔다. 이 협정은 2019년 10차 협정이 종료된 뒤 공백상태였던 지난해까지 소급해 적용되며, 2025년까지 6년 간의 방위비 분담금을 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올해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1조 1,833억원을 미국 정부에 내야 한는데, 이는 2019년 방위비 분담금 총액 (1조 389억원)에 비해 무려 13.9%(1444억) 증가한 금액이다. 2022년부터는 이에 더해 전년도 우리 국방비 증가율 만큼 매년 인상한 금액을 지급해야 할 형편이다. 올해 국방비 증가율이 5.4%이므로 내년에는 약 639억 정도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인상율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이뤄진 직전 제10차 SMA협정(2019) 당시의 8.2% 인상율과 비교해도 훨씬 높은 것이다. 이 인상율 차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와 비교하면 더 심각하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체결된 2009년 제8차 SMA 협정에서는 체결 첫해 2.5% 인상에 불과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체결된 제9차 SMA 협정 때에도 체결 첫해 인상율은 5.8% 수준이었다. 협정 역사 전체를 놓고 봐도, 제5차 협정 체결 이후 첫해(25.7%)와 1994년 제2차 SMA(18.2%) 체결 첫해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인상율이다.
48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미국의 방위비 강요 규탄, 호르무즈 파병 반대 100인 평화행동’에 참석해 방위비분담금 인상 강요 사드 정식 배치시도 파병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 2020.02.18ⓒ김철수 기자
어쩌다가 한국 정부는 13.9%라는 어마어마한 인상율에 동의하게 되었을까. 정부는 이것이 지난해 국방비 증가율 7.4%(약 768억원)와 이번 협정 체결 과정에서 높아진 ‘방위비 분담금 인건비 최저배정비율 확대(75%→87%)’로 인한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증액분 6.5%(약 675억원)를 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두 가지가 합쳐지기 때문에 나오는 예외적인 증가율이라는 것이다.
그럼 한발 물러서서 6.5%를 빼고 생각해보자. 앞으로 4년 간 국방비 증가율 만큼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 줘야 한다. 이 ‘전년도 국방비 증가율’ 기준은 어디서 온 걸까. 앞선 7~9차 협정에서는 전년도 분담금에 전전년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인상해 왔으며, 이 중 8~9차 협정에서는 물가 상승폭이 높을 것을 감안해 4% 상한선을 정하기까지 했다. 이 기준이 ‘국방비 증가율’로 바뀐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제10차 협정 체결 때부터다.
외교부는 국방비 증가율을 방위비 분담금 인상기준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한국 정부의 재정 수준과 국방능력을 반영한 수치이며, 국회 심의를 통해 확정되고 국민 누구나 명확히 확인 가능하므로 신뢰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설명은 상식선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2025년까지 국방비를 높여 한국군의 국방력을 강화시키는 만큼, 미군에 주는 방위비 분담금도 높이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 두 가지가 연동되어야 하는가. 한국군의 무장이 고도화되고 국방력이 높아질수록 주한미군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왜 점점 지불해야 하는 돈은 늘어나는 것인가.
기준이 ‘물가상승률’에서 ‘국방비 증가율’로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물가상승률이 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을 짚었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보면, 2018년에 1.5%, 2019년에 0.4%, 2020년에 0.5%였다. 한국 물가상승률에 따라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면, 거의 인상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 기준으로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맞출 수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반면 국방비 증가율은 2020년 8월 발표된 ‘국방중기계획’(2021~2025년)에 따르면, 연평균 6.1% 수준의 상승이 공식화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기준으로 삼으면 상당한 방위비 인상폭이 보장된다.
미 트럼프 정권 시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난 존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 내용에 따르면, 2019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지불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 금액을 50억 달러(약 5조 7천억원) 규모로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 이번 협정 체결 과정에서 지난해 3월 한미 협상팀은 ‘첫해 13.6% 인상’안에 사실상 합의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아 1년 가까이 교착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미국 측 압력이 상당한 것이 사실이니, 한국 정부도 그에 맞게 올려줄 명분으로 ‘국방비 증가율’을 기준점으로 찾아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자료사진)ⓒAP/뉴시스
하지만 현재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 행정부가 들어서지 않았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동맹을 복구하고 다시 한번 세계와 관여할 것”이라며 ‘동맹 중시’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이 ‘무임승차자’라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더 내라고 요구했던 트럼부 행정부와는 뭐든 달라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11차 SMA 체결 첫해 인상율인 13.9%는 심지어 지난해 3월 잠정 협상안보다도 0.3%p 높다.
한국 협상팀은 바뀐 미국 협상팀을 상대로 새로 짠 협상안을 낼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애초에 상당한 인상율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었나 보다. 그러니 바이든 행정부 출범 46일만에 단 두 번 만나고 타결을 이룬 것이 아닐까. 10차 SMA 체결 당시 방위비 분담금 불용액이 적지 않아 감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했는데, 미국 새 행정부를 상대로 이런 점을 따져볼 생각을 왜 하지 않은 걸까.
주한미군이 한국민을 위해서만 우리 땅에 주둔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미국 측은 자신들의 안보 이익을 위해 중국을 견제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펼치는데 주한미군을 쓴다. 여기에 매년 우리 국민의 혈세 1조 이상이 투여되고 있고, 11차 협정 마지막해에 가면 이 금액은 1조 5천억원(국방중기계획 기준)에 달할텐데 왜 새로 협상에 임할 생각을 하지 않았나. 미국 측 협상팀이야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 대폭 증액된 협상안을 굳이 깎을 필요가 없으니, 한국 협상팀이 주장하지 않으면 달라질 이유가 없다.
결국 11차 SMA 협상은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려 달라는 미국 정부의 강한 압력에 이기지 못한 한국 정부가 손을 든 것이다.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노동자의 생계 안정을 위한 몇 가지 내용을 협상안에 담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무엇보다 이 협상 결과를 두고 “합리적이고 공평한 방위비 분담 수준을 만들어 냈다”는 외교부의 평가는 견디기가 힘들다.
이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