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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떤 관료/ 김남주

더불어 걷는 길 2017. 8. 21. 07:39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디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성실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 시집 조국은 하나다(남풍신서,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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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량이 아예 안 되는 관료들은 논외로 치고 그들은 하나같이 근면성실하고 정직하며 충성스러웠다. 그러나 시인은 그 관료들의 주인이 누구든, 무슨 일을 시키든 아랑곳없이 충직하였으므로 그들을 개라고 부른다. 자신에게 봉급을 주고 자신을 출세 길로 이끌어줄 사람이라면 주인이 아무리 부도덕하고 정당하지 못한 일을 시킬지라도 기꺼이 충성을 다한다. 이러한 개 같은 관료주의를 말할 때, 흔히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와 그녀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린다. 아렌트는 유태인 학살 전범 아이히만의 전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끌어냈다.


 아이히만은 증오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수십만 유태인들을 죽음의 가스실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관료주의자의 극단적 표본으로 규정했다. 아이히만의 항변대로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유태인을 ‘처리’했을 뿐 자신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나치의 광신도도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도 아닌 평범한 이웃 아저씨였다. 남다른 출세욕의 소유자란 점을 제외하면 그는 아주 모범적인 독일의 시민이자 관료였다.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천연덕스러운 자기변호에 소름이 돋는다면서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를 감정한 여섯 명의 정신과의사들은 한 명을 빼곤 모두 아이히만이 우리들과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아렌트도 관료제적 타성과 인습적 관례를 따른 ‘명령수행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다만 전체주의에 길들여지고 선악의 판단력이 마비된 충직한 관료라는 것이다. ‘평범한 악’을 말하면서 아이히만의 ‘사유의 무능력’이 학살의 원흉이라고 지적한다.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인 반면 ‘무사유’는 그 시도 자체도 않는 공감능력의 결여를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유의 불구는 거대한 악을 저지러거나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사유는 지식이 아니다. 옳고 그른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변별하는 힘이다. 철학자들은 '사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의무'라고 말한다. 그 의무를 다하지 않고 조직의 논리에 순응하며 저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악은 창대해졌다. 에리히 프롬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양자택일의 문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아니라 관료주의와 휴머니즘’이라고 했다. 관료주의가 반드시 휴머니즘의 대척에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관료주의의 무비판과 타성이 양산해낸 폐해가 바로 적폐가 아니겠는가. 모든 관료주의자들을 아이히만에 비유할 바는 아니나 출세한 관료주의자들 중에는 그처럼 처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다만 그들이 받은 숱한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지시 가운데 아이히만의 경우처럼 어마 무시한 오더가 없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 고위공직자가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존재’라며 규칙에 얽매여 자의성을 발휘할 수 없는 관료의 신세를 한탄한 적이 있다. 나치의 충실한 관료였던 아이히만이 바로 그 영혼 없는 관료의 단적인 예다. 악은 악마적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물들이 무비판적으로 체제를 받아들일 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은 ‘아무리 평범한 시민이라도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비판 없이 집단의 광기에 휩쓸리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늘 공직자 후보의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동안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성실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관료생활을 했던 분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거부감이 적다고 평가받는 정통관료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를 주목한다. 이른바 흙수저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성공한 케이스다. 과거 몸담았던 조직에서 누구보다 능력을 인정받아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이다. 요금문제로 시비가 붙어 택시기사와 멱살잡이를 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등의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며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비슷한 경우로 30만원 벌금 폭력전과가 있다. 그리고 다른 사안은 오래전부터 이런 청문회가 있으리라 판단하고 오죽 대비를 잘 했겠나.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국정과제비서관과 예산실장을 맡아 4대강 주도 세력의 일원이었다는 점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정정책이 오락가락했다는 점이 좀 찝찝하다. 그래서 새 정부의 재정확장정책을 잘 주도해갈 수 있을지 의구심도 있다. 그러나 정작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그의 인생이 너무 성실했고 출세지향이었다는 점이다. 그와 견주어 오래전 상고를 나와 국책은행에 입행한 후 야간대학을 다니며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한 친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중앙부처 공무원이 되었으나 전두환 정부 아래 다른 사람 다 먹는 뇌물을 혼자 거절했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다가 결국 사표를 써 던지고 나온 인물인데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조직 관성에 매몰되지 않은 그를 떠올리며 후보자의 번지레한 얼굴을 다시 쳐다본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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